이해와 오해 [73] 60여년 전 상해에서 ‘춘향전’ 공연, 한류의 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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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년 전 상해에서 ‘춘향전’ 공연, 한류의 원형
박종일
1953년, 상해 월극원(越劇院)에서 서옥란(徐玉蘭)-(각주1)과 왕문연(王文娟)(각주2)이 이끄는 극단이 조선(한국)전쟁 참전 군인들을 위한 위문 공연을 열었다. 그 전에 극단은 조선(북한)극단이 공연한 신연극 ‘춘향’을 보고 대사를 알아듣지는 못해도 극의 줄거리는 이해하였고 이 극이 중국인에게도 호소력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서옥란과 왕문견은 이 극을 월극으로 옮기기로 결정하였다. 북한 외무상 남일(南日, 휴전협정 체결시 공산군측 대표)이 그의 비서를 시켜 극본을 중국어로 번역해 주었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월극 극본이 만들어졌다.
1954년 8월 화동(華東) 월극(越劇)실험극단이 장강(長江)극장에서 ‘춘향전’을 초연했다. 89회나 장기 공연하였고 매회 공연마다 만석이었으며 관중 연인원이 9만여 명이었다. 1954년 겨울, 이 극단은 ‘춘향전’을 들고 화동지역 희곡경연대회에 참가하여 극본 1등상, 우수연출상, 감독상, 음악연출상, 무대미술상, 극본상을 수상했다. 서옥란과 왕문연은 연기 1등상을 수상했다.
1955년, ‘춘향전’은 다시 중국 정부 문화부가 선정한 우수극본상을 받았고 상해 월극원의 상설공연 레파토리가 되었다. 이때부터 ‘춘향전’은 왕문연의 대표작이 되었다. 1954년 10월에는 상해를 방문한 버마의 우누 수상을 위한 환영행사의 하나로서 공연되었다. 1955년 2월에는 북경 천교(天橋)극장에서 공연하였고 이때 관람한 주은래 총리가 공연이 끝난 후 무대 뒤로 찾아와 극단원들을 극려했다. 이를 계기로 ‘춘향전’은 신봉하(新鳳霞)가 주연한 평극(評劇), 조연협(趙燕俠)과 언혜주(言慧珠)가 주연한 경극(京劇)으로도 옮겨졌다. 1955년과 1962년에는 상해문화출판사와 상해문예출판사에서 《춘향전》을 단행본으로 출판했다. 서옥란과 왕문연이 극중에서 부른 아리아는 음반으로 제작되어 널리 팔렸다. 평극판 ‘춘향전’에서 옥중의 춘향이 이몽룡을 그리며 부른 아리아는 평단으로부터 창작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받았다.
조극(潮劇)판 ‘춘향전’은 도입부에 전통적인 조선의 음악형식을 채용하여 극의 지리적 배경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조극판 ‘춘향전’에 나오는 ‘사랑가’ 《愛歌》는 깊고도 은밀한 정을 잘 표현하였고, ‘이별가’《别歌》와 ‘옥중가’《狱中歌》는 애절한 심정을 잘 표현하여 인기가 높았기에 ‘삼가(三歌)’(1957년 녹음)라는 표제로 음반이 제작되어 팔렸다.
2012년 9월 북경에서 열린 한중수교 2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서 월극판 《춘향전》, 평극판 《춘향전》, 한국의 판소리 《춘향전》이 한 무대에서 공연되었다.
60여 년 전에 중국(상해)에서 공연된 《춘향전》은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한류’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50년대 초는 한국전쟁을 계기로 중공과 북한의 관계가 매우 긴밀했고, 봉건계급제의 제약을 타파한 청춘남녀의 사랑얘기라는 기본 줄거리가 중국인의 정서에도 맞았기 때문에 《춘향전》은 중국 전통극계의 장기공연 종목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어떤 이는 중국의 《홍루몽(紅樓夢)》, 일본의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 한국의 《춘향전》이 동양 3대 애정고전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주
1) 왕문연[여. 1926~ ] 현재 중국 국가 1급 배우, 중국 희곡협회이사
2) 서옥란[여. 1921~2017], 무형문화재 월극 국가공인 전승자
3) 월극은 중국 절강성 농촌에서 기원되었다. 경극[북경지역], 곤극[昆劇, 운남성지역], 천극[川劇, 사천성지역]과 더불어 중국의 4대 전통극으로 꼽힌다)
4) 평극은 중국 하북성 농촌에서 기원하여 동북지역으로 확산된 전통극)
5) 조극은 광동지역에서 기원한 전통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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