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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호호 육아일기 - 나들이

입력 : 2014-11-12 22:43:00
수정 : 0000-00-00 00:00:00

나는 완벽주의자다. 그런데 세상은 완벽하지 않으니 늘 상처받고 무너지는 일이 많다. 예를 들면 이와 같은 경우다.



 



“빨리 빨리 일어나라. 오늘 율곡문화제 가기로 했잖아.”



 



김밥을 싸며 악을 쓰는 것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율곡문화제 사생대회가 10시부터 있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마음은 급하지만 즐거웠다. 어릴 적에 해마다 열렸던 ‘전국 소년 소녀 글짓기 대회’에 이렇게 김밥을 싸서 따라나섰던 우리 엄마가 생각나서. 그때는 지금처럼 가족나들이가 흔치 않아서 “아이고, 우리 딸내미가 글을 잘 써서 엄마 바람 쏘이게 해주니 효녀일세” 하며 즐겁게 소풍 준비를 하셨던 엄마. 나도 엄마의 그때 그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김밥을 썰어서 눈곱도 떼지 않은 아이들 입에 넣어주며 “우리 이쁜 아들들 덕에 소풍 가네. 룰루랄라 호호호”했다. 남편이 함께 가지 못하는 게 걸렸지만... 돗자리를 깔고 남편과 내가 웃으며 간식을 먹고, 아들 둘이 글 쓰고 그림 그리는 멋진 풍경을 연출하고 싶었는데 남편이 빠지다니, 왠지 나사가 하나 조여지지 않아 너풀거리는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이것저것 준비를 하다 보니 12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 주차요원이 우리를 세웠다. 주차장이 꽉 찼으니 갓길에 주차하고 걸어가라는 것이다. 이렇게 먼 거리에서 이 많은 짐을 가지고 남편도 없이 걸어가야하다니... 짜증이 확 치밀었다. 두 번째로 나사가 빠졌다.



 



무대 주변으로 많은 가족들이 돗자리를 깔고 그늘막 텐트도 몇 몇 보였다. 그것을 본 아이들이 ‘텐트 치고 싶다’고 성화했다. 트렁크에 있는 텐트를 가져오려면 먼 거리를 걸어가야하는데... 하지만 텐트 안에서 책을 읽고 싶은 욕심이 생겨 텐트를 갖고왔다. 그런데 남편 없이 혼자 텐트를 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낑낑대고 있는 나를 조롱 섞인 미소로 쳐다보는 어떤 아저씨가 신경이 쓰여 텐트 치는 것을 포기했다. 그 자리를 떠나 제일 구석진 곳에 돗자리를 깔았더니 햇빛이 쨍쨍, 세 번째 나사가 빠졌다.



 



엄마 심기가 불편해진 것을 눈치 챈 큰아들은 시키지 않아도 돗자리를 펴고, 얼른 글을 써야겠다며 필기도구를 꺼내 앉는다. 미술도구 꺼내는 걸 힘들어하는 동생을 도와주고, 나에게 앉으라고 자기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치며 눈짓을 했다. 그 모습을 보니 못난 엄마가 된 죄책감에 네 번째 나사가 빠졌다. 작은 아들은 무엇에 마음이 상했는지 그림을 대충 그리고는 자기는 상을 안받을 거라고 했다. 큰 아들이 쓴 글을 보니 이 또한 영 마음에 들지 않아 결국 다섯 번째 나사가 빠지고 말았다. 옛날 우리 엄마는 내가 글을 어떻게 쓰든 관여하지 않고 나들이 와서 좋다 하시며 나에게 웃는 얼굴만 보여줬는데 나는 왜 이리 못난 엄마란 말인가.



 



어찌어찌 아이들의 그림과 글은 제출하고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수다를 떨고 있는데 작은 아들이 고무줄 총을 사달라고 했다. 나무로 만든 그까짓 것, 삼천 원 쯤 하겠지 싶어 가봤더니 모두 만 원 이상이었다. “이 비싼 걸 왜 사겠다는 거야?” 결국 이렇게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최악의 나들이가 되고 말았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쁜 기분을 날려버리기 위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늘막 텐트 안에서 남편과 나는 사람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서 뽀뽀를 살짝 하고, 방울토마토를 서로의 입에 넣어주고 하하하 호호호 웃는 가운데 아이들은 텐트 앞에서 공놀이를 하는 풍경, 그런 멋진 나들이를 이 가을이 가기 전에 꼭 해야지 하고 별렀던 그날이 보름 쯤 지났나? 벌써 찬바람이 분다. 흑흑...



 



 



글쓴이 / 허영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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