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산타가 된 자운학교 예술제
수정 : 2024-11-28 09:07:26
서로의 산타가 된 자운학교 예술제
- "인류를 살리는 것은, 결국 타인을 위한 눈물 한 방울이다.”
글 사진 : 박재은(자운학교 교사)
<편집자주> 파주시에 자리한 공립 특수교육기관 자운학교에서 근무하는 박재은 선생님이 지난 24년 11월 22일 열린 자운예술제를 마치고 본사로 보내온 에세이입니다. 특수학교에서 애쓰시는 선생님들이 학생들과 함께 만든 감동의 시간이 그려져있습니다. 선생님의 에세이를 통해 특수학교와 학생과 선생님들의 일터이자 성장 현장을 가슴에 담아보길 권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선생님들의 노고에 다시 감사드립니다. |
2024년 첫눈이 소복이 쌓였다. 어제도 빨갛게 남아있던 단풍이 하룻밤 사이에 하얀 눈꽃을 피웠다. 하늘이 하는 일을 누가 어찌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등교하기 전 창문을 보고 있자니, 며칠 전 교원 결핵 검사 차 인근 보건소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보건소 여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나의 허리춤에도 채 미치지 않는 꼬마가 내 뒤에 섰다. 아이가 신은 토끼 부츠보다 더 토끼 같은, 보들보들 사랑스러운 얼굴. 그 옆엔 더 작은 아기를 두툼한 점퍼로 덮어 양팔로 힘겹게 안고 있는 엄마가 서 있었고, 난 그 세 사람을 먼저 들여보내며 문을 잡아 주었다. 누구라도 했을 일인데, 꼬마는 뒤돌아 내게 눈을 맞추고는 작은 배 위에, 작은 두 손을 올리며 “이모 고맙뜹니다. 아프디 마떼여.” 라고 낭랑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작은 손은 그새 엄마의 점퍼 끝자락을 잡고 총총 멀어졌다. 고단했던 내 마음이 한순간 따뜻하게 녹았다.
인류를 다른 세계로 안내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 첫눈 내리는 오늘, 난 생각한다. 명료한 질문과 요구 없이도 AI가 하늘과 공기를 바꾸어 눈을 내려주고, 사람의 미묘한 감정을 미리 헤아려 다독여주는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럴 리 만무하다. 사람과 사람, 자연과 사람 사이에서만 채워지는 것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소중한 것들이 세상을 그래도 살아 봄 직한 곳으로 만들어 준다.
‘자운학교’ 안에도 아직 따뜻하고 살만한 세상이 있다. 경기도 파주시에 자리한 공립 특수교육기관 자운학교. 나의 소중한 일터이자 다양한 학생들이 모여 성장하는 특수교육 현장이다. 학교의 전경과 주변은 고요하고 푸르다. 하지만 각 교실의 일상은 버라이어티며 즐겁고도 눈물겹다. 발화가 없어 눈빛 손짓만으로 헤아려야 하는 학생, 교실 밖으로 탈출을 시도해 담임교사의 애를 태우는 학생, 식재료에 민감해 잘 씹어 천천히 먹도록 하릴없이 기다려줘야 하는 학생, 계속 허기를 느껴 먹을 것을 찾는 학생, 작은 소리에도 놀라 어디든 누워 꺼이꺼이 우는 학생, 휠체어 없이는 한 발도 홀로 이동이 어려운 학생, 관심을 받으려고 책상 위로 올라가는 학생, 말보다 손발이 먼저 나가는 학생, 대소변 조절이 어려워 바지를 내리기도 전에 시원하게 볼일을 보는 학생, 수시로 산소통이 필요한 학생, 입원 후에 영영 돌아오지 못한 학생... 모두 나열하기도 숨이 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곁에는 늘 교사들이 함께 한다. 매일의 성장을 기대하며 기도하며, 올해도 12월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 해를 보내며 유난히 힘겨운 특수교육 현장에서 서로를 격려하고자 예술체육부 주관으로 2024년 11월 22일 금요일 ‘자운 예술제’가 열렸다.
그럴듯한 포장 없이 ‘무대와 객석이 함께 행복한 축제’, ‘내 모습 이대로 어여쁘다. 그리고 너도 그러하다’의 마음으로. 유치부, 초등부, 중고등부, 전공과 전교생이 가득 모인 강당은 따뜻하고 정돈된 모습이었다. 주관 부서 선생님들의 배려와 애씀은 이미 정평이 나 있었지만 새삼 또 감동했던 이유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는 동료들의 모습이 지금의 교육 현장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모두가 기다린 첫 무대는 나의 학생들이 올랐다. 휠체어가 있어야 이동이 가능하지만, 무대 위에서 두 발로 딛고 일어나 한 발 떼기에 도전했다. 뒤에 있는 나에게 의지하여 허리에 힘을 싣는 아이들. 나는 혹시나 내 손에 힘이 빠져 아이들을 놓칠까봐 신경이 곤두서 공연 중 환호도 박수도 사실 잘 들리지 않았다. 무사히 끝났다는 안도를 하고서야 유·초등 합동 연주부터 마지막 고등부의 환상적인 랩 공연까지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마치 태어나 처음이자 마지막 공연인 것 마냥 신나게 즐기는 아이들, 그 곁에 그림자처럼 서 있는 나의 동료들이 보였다.
흐뭇함을 감출 길 없다는 얼굴로 무대를 바라보는 교장, 교감선생님. 한 명의 아이도 빠짐없이 함께하고 싶어 의욕 없는 학생을 바퀴 달린 시트에 편히 앉히고는 정작 본인은 어깨가 바닥에 닿을 듯 허리를 굽혀 밀고 끌며 무대를 종횡무진하던 고등부 선생님, 춤추며 노래하는 제자들 뒤에 바짝 붙어 무릎까지 꿇고 앉아 손과 발을 움직여주던 선생님들, 독무대를 펼치는 제자를 무대 밑에서 하염없이 바라보며 눈을 떼지 못하던 선생님, 준비한 동작을 잊을까봐 무대 바닥에 철퍼덕 앉아 두 팔이 떨어져라 흔들며 동작을 알려주던 선생님들, 아이들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이리저리 앉았다 일어나며 까치발을 하며 바쁘게 움직이는 선생님들, 큰 음악 소리에 놀라 우는 아이를 데리고 몇 번이고 운동장을 산책하며 달래는 선생님, 자신의 학생들이 있음에도 다른 곳에 도움이 필요할지 몰라 주변을 살피던 선생님들... 동료들의 모습도 다 담아내기엔 숨이 차다. 각자의 교실에서 또 한 해 흘렸을 땀과 눈물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마음이 먹먹하고, 그리고 자랑스러웠다.
공연이 모두 끝난 후 나는 동료 선생님께 나의 학생들 공연 전체 영상을 받았다. 부탁할 틈도 없었을뿐더러, 그녀 또한 챙겨야 할 아이들이 있었는데, 삼각대까지 설치해 우리 아이들을 찍어주었단다. 그리고 그저 사람 좋게 웃으며 “그냥.. 너무 예뻐서요”라고 했다. “..........” 아이들이 발을 뗀 감동만큼이나 처음부터 끝까지 영상에 담아준 동료의 따뜻한 마음, 그 안의 박수와 환호, 눈물 섞인 탄식.. 긴 여운이 남아, 보고 또 보며 눈물이 났다.
“특수교사는 천사가 아니라 그저 사람이다. 아픈 날 아프고 화나는 날엔 화가 난다. 그러니 알아 달라. 보호해 달라.”
사실, 내 주변엔 천사들이 너무 많다. 그 사실이 문제일까? 그들의 소중함을 소홀히 하는 정책이 문제일까?
그저 아이들이 예뻐서 혹은 교육자로서의 소명을 느껴 현장을 지키는 교사들이 처음의 선한 의지를 잃지 않고 아이들을 키워내도록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지금이다. 날개 달고 훨훨 날아, 아픈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날아가고 싶었을 소중한 동료들을 우리는 잃었고, 많은 곳에서 날개가 꺾여 울고 있는 동료들의 아픔이 들려온다. 하지만 적어도 나의 일상에는, 여전히 선생님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가르치는 부모와 그 배움을 실천하는 아이들, 그들의 교육적 성장을 위해 숨 쉬듯 애쓰는 교사들이 함께한다. 졸업하는 제자들을 위해 영상을 찍으며 눈물이 범벅이 되어 몇 번이고 닦아내고 다시 녹화 버튼을 누르는 선생님들이 여전히 가까이에 있다.
학교의 역할이 인공지능으로는 대체 불가한 이유는, 그 안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어령 선생님의 생전 칼럼 한 구절이 내내 떠 오른다. “인류를 살리는 것은, 결국 타인을 위한 눈물 한 방울이다.”
인공지능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도, 사람에겐 오직 사람의 온기여야만 채워지는 것이 있고, 그 중심에 늘 학교가 존재한다. 제자들을 위해 기꺼이 내어주는 우리의 손과 발 그리고 눈물, 그것이 AI 세상에 우리가 대체 불가한 존재로 자리하는 이유다. 눈꽃으로 시작된 이 겨울, 때론 서글픈 현실 속에서도 다시 또 제자들을 위해 산타가 되어줄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을 눈물겹게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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