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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콩달콩이야기 <1>모두가 행복한 설날 되소서 - 정진화(평화마을짓자 이사장)

입력 : 2025-02-18 06:14:15
수정 : 2025-02-18 06:15:01

알콩달콩 이야기 <1>

 

모두가 행복한 설날 되소서

                                 정 진 화(평화마을짓자 이사장)

 

일곱 딸을 낳으신 부모님은 일찍부터 11일 신정에 설을 쇠셨다. 덕분에 딸들이 결혼하고 구정에 시댁에 가느라 두 분만 명절을 지내지 않고, 한 해가 바뀌는 뜻깊은 날에 4대가 모여 설을 쇴다. 아버지가 작년에 돌아가시고 맞이한 첫 설날, 빈 자리가 허전했지만 자매들은 각자 한 두 가지 음식을 해 와서 차례상에 올리고 절을 했다.

필자의 아들네가 하루 전 날 와서 명절 준비를 같이 하다보니 초등학교 다니는 손녀들이 투어스의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태권도 동작을 자랑스레 선보인다. 어릴 때 우리들은 연극과 춤, 노래, 심지어 꽁뜨를 준비해서 명절에 어른들 앞에서 깜짝공연을 하곤 했었다. 이런 가족학예회의 전통이 오래도록 이어져서 이제 손주 대에 이르렀다.

 

 

그동안 맏딸인 내가 어머니 칠순을 지내고부터 제주 노릇을 해왔지만, 작년부터 돌아가며 하기로 하여 올해는 다섯째가 설 기획을 하고 차례를 제부와 함께 진행했다. 맏이가 언제까지 맏이이고 막내가 언제까지 막내이겠는가. K-장녀의 역할을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여유로운 미소가 흘러나왔다. 올해 은퇴하는 동생, 결혼하는 조카, 출산을 앞두거나 집을 짓는 조카가 나와서 특별히 잔을 올리고 소감을 말하니 축하가 쏟아졌다. 서너 살 된 손주들이 엉거주춤 엉덩이를 치켜세우고 서로 맞절을 하는 깜찍한 모습에 함박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올해 딸들 단톡방에서는 각자 해온 음식을 뷔페처럼 차려 개인접시에 담아먹고 접시와 수저를 각자 설거지하자는 제안이 있어 그렇게 해보기로 했다. 이전에는 접시에 담은 음식이 떨어지면 계속 살펴보며 누군가 채워놓아야 했고, 100개는 되는 접시를 몇 끼씩 씻어야했다. 그러자니 아무래도 딸들이 더 움직이게 되고 설거지에 대한 부담도 컸다. 이번에는 차려준 음식이 아니라 내가 골라서 먹는 음식이다보니 남기는 반찬이 별로 없었다. 있다 해도 평화마을 닭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걱정이 없었다.

설날 배불리 먹고 집에만 있는 게 아쉬워, 새해 청정한 마음으로 평화를 기원하고 싶어 임진각에 가보자고 하니 고맙게도 다들 선뜻 나섰다. 평소엔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은 그곳에 한국인 가족들이 아주 많이 와 있었다. 독개다리 너머 북녘 하늘을 바라보고 통일로 가는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가족사진도 찍었다. 20,30대 조카들은 임진각에 처음 와 본다며 분단이 실감난다고 신기해했다. 분단이 아니라면 복지에 지출될 예산이 더 많을텐데, 하는 아쉬움 속에 평화통일을 기원하며 잃어버린 삼십년노래도 따라 불렀다.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1인가족이 늘어나는 시대에 이런 설날은 또 어떤가. 제주도에 내려간 친구는 몇 년째 설날이면 싱글벙글떡국을 먹는다고 한다. 혼자 살거나 일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사는 사람들을 불러모아 떡국을 먹으며 즐거운 수다를 떤다는 것이다. 꼭 혈연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따뜻하게 명절을 맞이하며 서로 가까워지는 것도 참 멋지다.

가족이 해체되고 공동체가 사라지는 이때, 평등한 명절 문화를 만들어가고 모두가 행복한 잔치가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나씩 만들어온 음식을 덜어먹고 다 먹은 그릇을 스스로 씻으며 소망을 나누는 즐거운 잔치가 되면 좋겠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가족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결국 우리의 일상을 바꾸고 삶을 변화시켜나가는 것일 게다. 시국은 어지럽지만 모두가 행복한 설날 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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