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콩달콩 이야기 <2> 순천만에 공릉천 있다
수정 : 2025-02-26 01:37:24
알콩달콩 이야기 <2>
순천만에 공릉천 있다
정 진 화(평화마을짓자 이사장)
눈이 펑펑 내리고 난 이월의 어느 날, 밤새 얼어붙은 길을 따라 살금살금 ‘공릉천친구들’이 순천만으로 떠났다. 작년 11월 6일 파주 시민단체들이 ‘공릉천의 내일을 상상한다’는 상상포럼을 개최한 이후, 공릉천의 생태를 보존하려는 노력은 단지 둑마루를 포장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논의를 넘어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시민생태정원을 꿈꾸는 쪽으로 번지게 되었다. 영국의 런던 근처 3개주를 흐르는 리밸리 강변은 쓰레기가 가득 버려진 곳이었는데 그곳을 수십 년에 걸쳐 아름다운 생태정원으로 거듭나게 한 민관 협치의 성공사례를 보며, 우리의 공릉천은 어디로 가야할까,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하필 가장 추운 날이었지만, 잔디와 어싱을 할 수 있는 흙길이 반반씩 조성된 둑마루와 바로 아래 자전거가 다니는 자갈길을 따라 갈대와 칠면초 군락지를 바라보며 우리는 하염없이 걸었다. 순천만 습지는 한강 하구로 흘러드는 공릉천처럼 바닷물이 거꾸로 들어오는 진기한 구역이지만, 홍수 위험을 이유로 둑마루를 포장하지 않고 단단하게 흙다짐을 하여 생태계를 잘 보전하고 있었다.
순천만 습지에는 청둥오리, 저어새, 갈매기, 기러기들이 서로 어울려 먹이활동을 하며 쉬고 있고, 둑마루 반대편 논에는 흑두루미 수백 마리가 서로 가까이 몸을 옹송그린 채 추위를 견디며 먹이활동을 하고 있었다. 두루미 도래지인 일본 이즈미 지역에서 먹이를 조금만 주게 되자 순천만 쪽으로 철새들이 더 많이 온다고 한다. 그날은 추위 탓에 평소보다 아주 적게 나왔다는데도 전 세계에 개체수가 18,000마리밖에 되지 않는 멸종위기종 흑두루미의 움직임을 내내 보고 있자니 정말 아름답고 평화롭기 그지 없었다. 반가운 겨울손님들을 맞아 순천시에서는 농부들로부터 친환경 벼를 구입해서 먹이로 주고 있는데 너무 많이 찾아들어 인근 지역으로 분산시키고 있다고 한다. ‘공릉천친구들’도 공릉천 주위 농민들에게 벼를 구입하여 뿌려주는 활동을 매주 해오고 있다. 지난번 이동시장실에서 파주시에 이러한 생태계서비스지불제를 요청했더니 받아들여서 올해 시행한다고 하니 다행이다 싶다.
다음날 새벽 농주리에 나가 흑두루미가 잠에서 깨어나 먹이활동을 하러 날아가는 장관을 보고 순천만 국가정원으로 향했다. 유럽에서는 울긋불긋 꽃이 한창인 정원보다 겨울정원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데, 서로 얽힌 하얀 줄기가 돋보이는 배롱나무와 잎을 떨구고 말없이 서 있는 헐벗은 나무들이 청아한 하늘과 어울려 아름다웠다. 순천만습지를 보호하기 위해 찾아오는 인파를 분산시키려고 5km 떨어진 거리에 국가정원을 만들었다는 해설사의 친절한 설명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공릉천 역시 민관협치를 통해 사람만이 아닌 뭇 생명들이 함께 어울려 상생하는 시민생태정원으로 재탄생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쓰레기가 버려진 순천만이 오늘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30년이 걸렸다. 200여개의 전봇대부터 뽑으며 지자체는 시민들과 환경단체들을 설득하고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했다. 덕분에 세계수의사 대회를 비롯한 수많은 국내외 행사들이 순천만 습지와 국가정원에서 열리고 일자리와 관광수입이 늘어나며 학교가 살아나는 연쇄반응이 일어났다. 순천만을 보며 파주시가 시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다소 지난해보이지만 최선의 길을 찾아가길 바란다. 우리 아이들이 공릉천을 걸으며 햇빛과 바람과 온갖 생명이 춤추는 대자연을 품을 수 있도록 공릉천 시민생태정원을 잘 만들면 좋겠다.
공릉천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어느 분의 말씀이 문득 떠오른다. “지금 우리는 계엄 때문에 위기를 느꼈지만, 공릉천에 사는 생명들은 언제나 계엄이다.” 그래, 우리 함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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