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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고양파주생협] 새해 첫날, 손잡고 일어서는 아침

입력 : 2016-01-11 14:04:00
수정 : 0000-00-00 00:00:00


새해 첫날, 손잡고 일어서는 아침




충남 당진시 신평면 매산리, 방조제 공사로 생긴 인공호수 삽교호에서 멀지 않은 작은 농촌 마을. 이백년 전 박해를 피해 천주교 신자들이 모여들었던 곳기도 합니다. 한살림의 오랜 생산지이기도 한 이 마을 한살림 생산자는 열 가구, 모두 가톨릭 신자입니다. 동지를 며칠 앞둔 지난 18일, 이 마을 낡은 천주교 공소에서 조촐한 추수 감사제가 열렸습니다. 왜 가을 다 지난 이 계절에 추수감사를 하는가 물으니, 김장 채소 수확이며 콩 타작까지 다 마친 지금에야 비로소 한 해 농사 마무리짓는 거라는 답이 돌아오네요.

 

한살림고양파주생협에서 선물 겸 들고 온 우리밀케이크가 어울리지 않게 앞 자리 차지하였지만 제대 밑 작은 교자상에 한 사발씩 올린 쌀과 콩 소담하였고, 한편에 놓인 팥 시루떡이며 사과, 배, 귤까지 십자가 옆에 가지런하였습니다. 소박한 상차림 만큼 의례 또한 간소합니다. 찬송가로 시작하여 생명평화를 향한 한살림의 다섯 가지 지향 낭독, 성경 봉독,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문 낭독, 늙은 군인의 노래를 개사한 농민의 노래 제창으로 마감하였습니다. 일행 중 누군가는 이 풍경을 보고 제각기 다른 문화와 제각기 다른 간구의 내용들이 어찌 이리 자연스럽게 어울릴까 감탄하더군요.

 

의례가 곧잘 형식만 남고 만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날의 제례는 간절함에 가 닿아 있었습니다. 길었던 가을 가뭄과 때 아닌 겨울장마까지 다 견디어 낸 작물과 농부들이지만 현실은 여전히 가혹합니다. 위기 아닌 때 없었던 농삿일의 결과는 언제나 벼랑 끝 생존입니다. 한·중 FTA 비준에 이어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참여는 기정사실이 되었으며, 서울 광화문 대로에서 최루액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백남기 농민은 지금도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한 해를 이렇게 마감합니다. 오래된 공소 건물에서 반주도 없이 입모아 불렀던 ‘농민의 노래’ 후렴구 가사는 이러하였습니다. “아아, 이제라도 늦지는 않았다. 이 땅의 농민들아 손잡고 일어서자”. 다시 새해를 맞이하는 첫 아침, 우리가 그 손 맞잡고 일어설 때입니다.

 

 

좌수일 한살림고양파주생협 기획홍보팀장

 

#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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