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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사회적 기업 - 출판도시활판공방

입력 : 2015-10-22 16: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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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사회적 기업 - 출판도시활판공방

투박하고 정겨운 ‘활자 인쇄" 보존하는 ‘활판공방

 

"남들이 다 가는 길을 가려하지 마라, 남들이 만들지 않는 너만의 책을 만들어라." 하시던 선생님의 말씀을 좇아 좋아하는 활판인쇄에 뛰어들었다. 역사 뒤안길로 사라진 활자 인쇄 기계들을 모으는 걸로 시작되었지만, 활판인쇄로 시집을 만들고, 고서를 복원하면서 꿈은 점점 많아진다. ‘출판도시활판공방" 박한수(47) 대표의 활판인쇄 사랑이야기가 펼쳐진다.

 




▲박한수 대표와 활자인쇄 고수들

 

사라진 활판인쇄를 찾아 전국을 누비다

우리 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판 ‘팔만대장경판"과 금속 활자본 불경 ‘직지심체요절"을 자랑한다. 인쇄문화의 선구자임을 자처하는 우리 곁에는 그러나 활자 인쇄의 흔적이 거의 사라지고 없다.

 

‘출판도시활판공방" 박한수(47) 대표는 인쇄의 역사에 관한 학위논문을 쓰던 1996년 즈음 활자 인쇄 시절의 작업과정을 볼 수 없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책에 쓰인 문장으로는 그 당시 인쇄 풍경이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는 것이었다. 1980년대까지 신문은 활자 인쇄를 통해 우리에게 아침마다 온갖 소식을 물어 날랐을 텐데 어느새 활자 인쇄의 모든 흔적은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활자 인쇄의 역사가 이대로 소멸되게 내버려 둘 수 없다고 생각한 박 대표는 주조기와 인쇄기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 신문사의 지하창고에도 활자 인쇄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마침내 주조기와 인쇄기를 찾아냈을 때 활판인쇄문화를 보존하는 일은 박 대표의 소명이 되어있었다.

 

선진국보다 뛰어난 활판인쇄 복원 국가적 관심은 부족한 현실

선진국에는 활자 인쇄 전시공간이 여러 곳 있어서 그곳에서 예전 방식대로 기계가 돌아가고 책이 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활판공방"에 오면 오히려 놀란다. 다양한 서체와 크기의 수많은 활자가 갖춰져 있는 까닭이다. 한국어로 책을 만들 때는 기본적으로 한글, 한자, 영어, 불어 등 다양한 글자가 필요하다. 한글은 2,350여 자, 한자는 14,000여 자 정도 되어야 문장 구성에 필요한 ‘1자족"을 이룰 수 있다. 현재 ‘활판공방"에는 약 50만 개의 활자가 구비되어 있다. 이렇게 다양한 글자를 보유한 전시관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박 대표는 자부한다.

 

2006년 출판도시에 문을 연 후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활판인쇄 전문가 5인을 영입해 어렵게 끌고 온 ‘활판공방"은 이제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있다. 올해 사회적 기업이 되면서 일부 지원을 받게 되었고, 박물관출판과 연계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고서 복원사업이 진행되는 등 그동안의 노력들이 조금씩 결과물로 돌아오고 있다.

 

▲글자를 나열하는 조판 작업

 

민족의 정기를 영원히, 유네스코 기록유산 복원 작업

고서 복원작업은 한지에 세월의 느낌을 입히면서 한 장씩 차근차근 인쇄해야 하는 고난도의 작업이다. ‘활판공방"에서는 ‘훈민정음해례본"과 ‘용비어천가", ‘대동여지도", 조선왕조 ‘의궤", ‘동의보감" 등을 복원했다. 민족의 역사와 정기가 담긴 책들을 한 권씩 복원할 때마다 박 대표의 가슴에는 벅찬 기쁨이 가득 찬다. 이런 감동들은 박 대표가 어려운 현실을 이겨내는 힘이 되어왔다. ‘활판공방"을 통해 박 대표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 기록유산 10여 종을 모두 복원하는 것에 일차적 목표를 두고 있다.

 

그 외 박 대표는 현재 우리민족의 정서를 대변해 주는 100여 시인의 시집 출간을 진행하고 있다. 전통 한지 위에 정갈하게 찍힌 시 한 편 한 편마다 담긴 우리의 정서와 정신이 영원히 존속되기를 박 대표는 기원하고 있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하는 ‘천자문 활판인쇄 체험교실"

‘출판도시활판공방"에서는 주조(녹인 납을 틀에 부어 글자 하나하나를 만드는 일), 문선(문장에 필요한 글자를 크기와 서체에 따라 골라 담는 일), 조판(글자를 순서대로 나열하는 과정), 인쇄(활자판 위에 종이를 대어 기계를 돌리며 인쇄), 제본(우리나라 전통 제본 방식인 오침제본, 실을 엮기 위해 다섯 개의 구멍을 뚫는 방식)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문선대를 가득 채운 납활자들 가운데서 자기 이름을 찾아 조판작업을 하고 인쇄를 하면 나만의 책임을 알려주는 판권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인쇄된 판권를 ‘천자문" 뒷면에 붙인 뒤 빨간 실로 오침제본을 한다. 매주 열기를 띠며 이루어지는 체험학습 속에서 누군가는 활판인쇄에 흥미와 애정을 지니게 되기를, 그렇게 다음 세대로 활자 인쇄의 가치가 전해지기를 ‘활판공방" 식구들은 희망하고 있다.

 

한편 이곳에서는 우리 글자의 디자인적 요소에 대해 다양한 시도를 꿈꾸는 타이포그라피와 북디자인 전공 대학생들의 수업도 매 학기 진행되고 있다.

 

▲필요한 글자를 고르는 문선 작업

 

근대인쇄부터 중세인쇄까지 인쇄역사 거꾸로 재현하기

박 대표는 인쇄기술의 발전을 거꾸로 거슬러 가며 인쇄의 모든 역사를 실현해 내고자 하는 계획을 지니고 있다. 1980년대의 활판인쇄를 재현해 냈고, 그 작업으로 현재 36인의 시집을 활판인쇄로 찍어냈다. 박 대표가 특별히 신념을 가지고 진행하고 있는 유네스코 기록유산 복원작업이 완료되면 다음에는 활판인쇄의 전 단계인 목판인쇄에 도전하고자 한다. 그 다음에는 손으로 쓴 글로 책을 만드는, 인쇄 역사의 모든 과정을 빠짐없이 뒤로 가며 실현시키고 싶다는 꿈을 그는 꾸고 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삶, 스스로 활자 인쇄가 좋고 궁금해서 시작한 일이다. 근대인쇄 기술부터 중세인쇄 기술로, 인쇄문화의 모든 것을 재현해 가겠다는 박 대표 곁에는 오랜 시간 변치 않을 은은한 향기가 번지고 있다.

 

전화 : 031-955-0084

 

 

글 이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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