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고딩의 같잖은 문화리뷰 <24> 전쟁과 평화와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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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고딩의 같잖은 문화리뷰 <24>
전쟁과 평화와 여성
- <25년간의 수요일>를 읽고
읽기 힘든 책들이 있다. <데미안>은 내가 이해하기엔 너무 난해했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내겐 너무 부담스럽고 어려운 말이 많았다. 하지만 <25년간의 수요일>은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할머니들의 경험은 너무나 고통스러워 읽는 나까지도 힘겹게 만들었다. 싫었다는 말은 아니다. 책은 무척 필요한 얘기를 어렵지 않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싫은 것은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무지했던 나였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상세한 인생 이야기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가장 많은 사람이 아는 동시에 가장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단순한 이야기들이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의 상세한 인생 얘기를 <25년간의 수요일>은 하고 있다. 어떻게 살아남으신 건지, 어떻게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리실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로 무서운 경험이었다. 할머니들은 한동안 그 기억을 묻고 사셨다.
그러던 중 길원옥 할머니의 고백을 시작으로 수면 밖으로 다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할머니들이 아픈 기억을 딛고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의 사과’가 필요했던 것도 있었지만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이라는 마음가짐이 컸기 때문이었다.
피해 여성을 찾아 연대하는 인권운동가
전쟁을 겪으며 그 누구보다 큰 상처를 입었을 사람들이 세상을 원망으로 바라보지 않고 한없이 자애롭게, 다시는 누구도 다쳐서는 안 된다는 다정한 생각으로 대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에게 피해를 입은 베트남 여성이나, 아프리카 내전으로 같은 일을 겪은 아프리카 여성들과 같은 다른 전쟁 피해 여성들을 찾아다니고 연대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인권운동가로서의 활동이 내게는 너무 아름답고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자신의 상처를 딛는 걸 넘어서 다른 이들의 상처까지 보듬어줄 수 있다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서 평화를 위해 일하는 구원자가 되기까지 할머니들의 마음은 얼마나 많은 아픔을 견뎌내고 얼마나 많은 성장을 거듭했을까 싶었다.
전쟁 피해 여성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동시에 이렇게나 많은 전쟁 피해 여성들이 존재한다는 것에 놀란 마음도 들었다. 전쟁이라고 하면 총을 들고 싸우는 남성들의 피해를 먼저 생각하게 되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접하는 아픔들도 군인들의 이야기가 많았다. 하지만 전쟁 중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 것은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어린이, 노인, 여성들이었다. 군인들은 적군과 아군이 분명한 곳에서 싸우지만, 이들의 싸움은 국가와 국가의 싸움과는 다르기 때문에 누구를 경계하고 누구를 믿을 것인지도 확실치 못하다. 그들의 상처는 알려지기도 쉽지 않다. 강간에 한해서 피해자를 탓하고 죄를 묻는 문화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약자는 전쟁 중에도, 전쟁이 끝나고도 약자라는 위치를 벗어나기가 너무 힘든 듯하다. 어쩌면 전쟁은 약자를 더 약하게 만들기 위해서 있는 것 아닐까?
내가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
전쟁, 미사일, 핵, 매일 같이 들려오는 이야기들이다. 분단국가이자 휴전국가에 사는 우리는 전쟁의 위협 속에서 살아간다. 그 공포가 더 커져가는 요즘, 전쟁이 터지면 무엇보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가장 무섭게 다가오는 것 같다. 관련 교육이 전무하니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전쟁 생각을 하며 겁에 질려있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는 지금 내가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결국 내 안위를 위해서지만, 나도 평화를 위해 실천해야 할 것이다.
조은 「파주에서」 틴 청소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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