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얼굴(123) 금촌고시원 원장 오윤환(70) - 20년간 고시원 운영하며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
수정 : 2022-11-30 04:52:07
아름다운 얼굴(123) 금촌고시원 원장 오윤환(70)
20년간 고시원 운영하며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
그의 얼굴은 늘 웃는다. 피부도 하얗고 눈을 떴는지 안 떴는지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그의 눈은 작다. 그러나 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늘 따뜻하다. 금촌 시장 근처에서 20여 년간 금촌 고시원을 운영하면서 그에게 포근한 잠자리와 정 넘친 식사를 제공 받았던 어려운 이웃들의 숫자는 천여 명이 넘는다. 그는 유명 인사다. 여러 차례 TV와 신문에 소개되었고 지난 10월엔 KT그룹 희망 나눔재단이 그에게 선행상을 수여했다. 재단은 “금촌 고시원 오윤환 원장이 지난 20년간 꾸준히 어려운 계층의 의식주 해결을 도와 희망나눔인으로 선정하게 됐다”라며 “특히 자립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희망을 나눴다는 점에서 귀감이 된다”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아이와 함께 찾아온 아주머니에게 숙식을 제공한 것이 시작이 되었다
2002년 문을 연 금촌 고시원은 초기 수년간은 파주시 경찰관이나 소방관 등 공무원 채용 시험을 대비하는 사람들이 머물던 공간이었다. 그러다 비가 오던 어느 날 오윤환 원장은 아이와 함께 하루 유숙을 청하는 아주머니의 어려운 사정을 듣고 숙박을 허락하면서 밥을 같이 먹게 됐고 이게 계기가 돼서 어려운 이웃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나눔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금촌고시원에 머무는 사람은 40여 명. 시대가 바뀌어 고시생은 거의 없고 주로 일용직 노동자, 오갈 데 없는 사람들, 저소득층이 대부분이다. 금촌 고시원은 다른 고시원과 달리 하루 3끼 식사를 제공한다. 좁은 주방이지만 이곳에서 오 원장과 일부 원생들이 음식을 만들어 부엌에 딸린 조그만 식당에서 식사한다. 인터뷰 날에도 주방에선 시래기를 가지고 점심준비가 한참이었다. 구수한 맛이 올라오는 게 정겹다.
부식값이 올라 고민 많은 오 원장. 인터뷰가 반갑지 않은 이유
하루 3끼 음식을 준비하는 것도 힘들지만 최근 부식값이 많이 올라 오 원장은 고민이 많다. “예전엔 시장에 10만 원을 가지고 이것저것 부식 거리를 사 왔지만, 지금은 30만 원도 넉넉지 않을 정도다”라며 그 밝은 얼굴이 잠시 어두워진다.
인터뷰 요청에 관한 웃지 못할 사연이 있다. 오 원장은 처음엔 인터뷰를 거절하다 마지못해 인터뷰를 수락했다. 처음에 거절했던 이유는 “방송이 나가면 열흘 정도 계속 전화벨이 울려 일을 할 수가 없을 정도다. 대개 재능기부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도 한시적이다. 물품을 대주겠다는 사람은 더러 있어도 현금지원은 드물다. 대신 방송이 나가면 자신이 어렵다며 금촌 고시원에 자신을 수용해 달라는 요구가 더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터뷰나 방송이 반갑지 않다. “한때 고시원을 폐원할까 고민한 적이 있었다”라고 말한 오 원장은 그만 두면 이들이 갈 곳이 없기에 버티며 견디고 있다. 어려운 이웃을 도우라는 하나님 명령에 따를 뿐, 다른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IMF로 정리해고된 후 자살까지 생각 하나님 신앙으로 삶을 되찾았다
오 원장은 언론인 출신이다. 서울신문사에서 사회부, 연예부 기자를 지냈고 경인지부장까지 승진했다. 그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거듭나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그러다 98년 IMF가 터졌고 그도 정리해고됐다. 집에 해고된 사실을 알릴 수 없어 매일 강화도 외포리 바닷가로 갔다. 근처의 큰 바위에서 들고 간 김밥과 소주를 까먹으며 참담한 신세를 비관했다.
계속되는 우울감에 차라리 죽겠다는 결심으로 디데이를 정하고 소주 5병을 마셨다. 이상하게 술에 취하지도 않았고 바위 밑으로 투신하려는 순간 집에 있던 아내와 딸아이의 고함이 환청으로 크게 들려왔다. 놀란 오 원장은 그 신비한 체험으로 회개하고 삶을 다시 되찾았다. 이후 그는 하나님과 교류하는 경험을 하면서 살길을 탐색했다. 금촌 고시원을 차린 후 그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금촌에 요양보호사를 양성하는 학원을 만들 것을 명령받았다. 당시 7개나 있던 파주시 요양보호사학원들이 학생모집에 어려움을 겪었을 때였다. 많은 사람이 말렸지만, 기적같이 요양보호사 자격시험제가 도입되면서 그의 학원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삼육대학과 요양보호사양성프로그램을 같이 운영하기도 했다. 4년 후 그는 다른 이에게 시설 운영을 넘기고 금촌 고시원에 집중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개인사업자라 피 주시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금촌 고시원
이곳에 거주하는 분들 중에는 금촌 고시원을 자기 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17년, 13년을 이곳에서 지내시는 분도 있다. 한 가족과 같다. 이곳에서 지내다 자립해 식당을 연 사람, 혹은 번듯한 직장에 들어간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경영 20년 차인 요즘, 오 원장은 힘에 부친다. 매일 식사 준비하는 것도 힘들고 겨울이 다가오니 월 300만 원 가까운 기름값이 걱정된다. 사실 오 원장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다. 파주시에서도 도와주려고 해도 고시원이 영리 목적을 위한 개인사업이기 때문에 보조금을 한 푼도 지원하지 못한다. 건물밖에 텐트를 치고 사람을 수용하면 도와줄 수 있다 하는데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대신 파주시는 알코올 중독자나 노숙자들을 보낼 시설이 없어 이곳에 보낸다. 도움을 주기는커녕 부담만 주는 형국이다. 그래도 오 원장은 이들을 내치지 못한다. 그가 믿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 때문이다.
칭찬도 좋지만, 그가 하는 일을 돕는 것이 더 좋다.
그가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고 칭찬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가 힘들게 사회 약자들을 돕고 있는 그를 실질적으로 도와야 한다. 가게 하시는 분들, 기업가들, 독지가들, 아니 가능하다면 우리가 모두 오 원장을 도와야 한다. 십시일반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그를 도와 그가 20년 넘게 해오고 있는 선행을 더 넓게 펼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도 동참할 생각이다. 인터뷰가 끝나 컴컴한 계단을 내려오면서 보니 1층 바깥에서 밝게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고시원 간판 앞에서 활짝 웃음을 지은 오 원장의 얼굴이 환하고 아름답다.
금촌 고시원: 파주시 금정18길 20
전화: 031-947-5476, 010-4255-6777
#1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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