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리 햇빛장 - 전종호
수정 : 2022-09-01 01:34:17
헤이리 햇빛장
전종호
오백 원짜리 반지 두 개를 팔고 아이 좋아라
우리 금방 부자 되겠네 좋아하는 꼬마들과
병 속에 햇빛을 모아 반딧불을 만들고
햇빛에 감자를 구워 먹는 철없는 어른들이 모여
땡볕 아래 햇빛장이라는 난장을 꾸렸다
임진강 한강 어우러져 돌아치는 강마을 헤이리
한울광장에 천막을 치고 돗자리를 깔고
민통선 안에서 자란 농산물 한 움큼씩 들고나온 사람
돈 안 되는 임원경제지 번역본을 펼쳐놓고
전통 레시피에 따라 남초장을 만드는 사람
야생초 같은 방생의 꽃들을 꺾어온 평화마을 짓자 사람들
미사일 날아다니는 시대에 웬 호미를 들고나온 노인
북한 쌀 북흑조로 평화 막걸리를 담아온 사람
북한식 피순대에 남녘의 방아전을 부치는 사람
이렇게 자본주의식 삶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사고팔고 먹고 마시고 떠들며 불콰해진 얼굴들에
어우러져 햇빛 가득 쏟아지느니
그래 그렇지 세상은 이리 물정 모르는
천진天眞과 어설픈 난만爛漫으로 이루어가는 거야
축적이나 병합 같은 자본의 논리와 관계없이
위험한 꿈들이 제풀에 일어나서 대들고 싸우다
엉겨 붙어 결정結晶이 되고 그 결정들이 모여
비 내리듯 또 한세상을 이루어가는 거야
햇빛을 사냥하고 있는 저 어처구니없는
상상에 의해서 세상은 한 번 더 뜨거워지고
제로웨이스트와 기후위기비상행동을 계몽하는
신세기 예수 같은 저 녹색주의자들에 의해서
세상은 한 발짝씩 나아가고 뒤집어지는 거야
원소를 쪼개어 파괴적인 힘을 얻는 핵물질과
거대한 약탈적인 산업 방식이 아니라
무기를 녹여 호미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
사방의 햇빛을 모으고 바람을 모으고
햇빛을 장場으로 만드는 사람들에 의하여
병들어 아픈 세상은 조금씩 소생되어 가고
동강 난 국토는 이어지고 동서 진영 이념으로
갈가리 나뉜 마음들이 하나로 합해질 수 있는 거야
어설픈 개벽의 꿈들이 햇빛장에 쏟아지고 있었다
임현주 기자
#1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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