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수 칼럼 <3> 미래를 위한 미래 재정구조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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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수 칼럼 <3>
미래를 위한 미래 재정구조 개혁
재정개혁은 재정거버넌스 개혁으로
지난주 기재부 분리를 포함한 재정개혁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국가를 움직이는 시스템은 법과 예산입니다. 따라서 대한민국을 만들어온 것도 이 두 분야이고, 문제의 핵심도 이 두 분야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기재부 예산실이 강력한 ‘예산 권능’을 토대로 부처를 통제하고 결국은 대통령실마저 쥐락펴락하는 현재의 예산 편성 구조의 문제점은 공무원들마저 강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중앙정부의 타 부처들, 소속 공공기관들, 지방정부, 그리고 국회종사자들까지도 예산 시즌에 예산편성권을 가진 예산실 사무실 앞에 장사진을 치며 예산을 구걸하는 행위를 ‘예산 구걸 행위’로 규정하고 부작용을 지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기재부를 배척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누군가 그 일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권력의 약화가 아니라 분산과 견제, 효율적 기능으로의 전환이 중요합니다. 재정거버넌스를 개혁하여 재정 당국이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앙과 지방을 포함한 일반정부 재정만 765조원이고 공공기관을 통한 재정운용은 918조원(2023년)이 넘습니다. 여기에 1374조원(2023)의 국유재산이 있습니다. 관련 인력은 300만명이 넘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공무원을 일반정부에 속한 사람만을 가리키는 경향이 있지만 상당수 국가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인력을 가리킵니다. 일부를 보조받는 보조기관이나, 용역 등을 제외하더라도 우리나라의 각종 출자출연, 위탁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더 늘어날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기재부가 너무 많은 권한을 쥔 것 처럼 보이지만, 그보다는 지나치게 많은 일을 하고 있어서 문제입니다. 이를 위해 예전 경제기획원처럼 예산과 성과관리 평가 기능을 분리하거나 개편하여 기획과 전략에 집중할 수 있도록 거버넌스 구조를 개편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톱다운 제도
그러면 기재부 개혁을 하지 않으면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을까요. 저는 그리 보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톱다운 제도입니다. 톱다운제도는 총액배분・자율편성(top-down budgeting) 제도가 공식 명칭입니다. 국가재정운용계획에 근거하여 부처별 지출한도를 먼저 정하고, 각 부처가 그 범위 내에서 자율적으로 예산을 편성하는 방식입니다. 과거 부처 요구・중앙편성(bottom-up budgeting) 제도는 예산 당국이 주도하여 단년도 재정 운영 및 개별 사업을 중심으로 예산을 편성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총액배분・자율편성 제도는 국가재정운용계획과 연계하여 중장기적・전략적으로 재원을 배분하고, 부처의 예산 편성 자율성과 책임성을 제고하기 위해 2005년도 예산안 편성 때부터 도입되었습니다.
「국가재정법」 제29조제2항은 ‘기획재정부장관은 국가재정운용계획과 예산편성을 연계하기 위하여 예산안 편성지침에 중앙관서별 지출한도를 포함하여 통보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여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총액배분・자율편성 제도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획재정부에서 각 부처의 예산요구서에 대해 세세한 사항까지 재검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처의 자율성 제고에 한계가 있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중앙관서별 지출한도를 보고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재정총량에 대한 국회의 심사권이 제약되는 등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톱다운 방식으로 설정했다고 하더라도 각 부처의 자율 편성을 기재부 예산실이 ‘협의 조정’이라는 명목으로 원점에서 재검토하기 때문에 하향식 예산편성과정에서 지켜야 할 각 부처의 자율성이 사실상 없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은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거짓말』을 쓴 전직 공무원 작가 노한동은 현장의 문제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전년도에 이미 반영된 사업은 대부분 무사통과이므로 별일이 없는 한 감액하지 않는다. 또한 예산의 증액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신규사업을 기획하기보다는 기존의 사업을 확대하는 방법을 선호한다”(147쪽)
일을 더 잘하기 위한 기재부 개혁
기재부의 역할은 기획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는 정부예산의 팽창을 막는 관리의 역할에 더 치중합니다. 모든 것을 다 관여하려는, 혹은 할 수 있는 구조에서 기인합니다. 노한동의 책에는 예로 예산실 사무관 한 명이 1조 6천억원(2024년 기준) 규모의 체육 예산을 담당한다고 말합니다. 이렇다 보니 관리하는 데도 벅차서 기존 예산보다는 신규예산에 초점이 맞춰지고 기존 예산 증액은 그 다음 순위로 밀립니다. 그 결과, 효과성이 떨어지는 사업은 폐지되는 일이 드물고, 반대로 반드시 필요한 새로운 정책이라고 해도 여간해서는 예산편성에 반영되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 저출산 등 급변하고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도 재정 건전성을 핑계로 근본적인 개혁을 하지 않는 것은 기존 사업은 적당한 타협을 하면서 새로운 사업은 관리라는 이름으로 통제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필연입니다. 기재부 예산실이 ‘관리의 칼잡이’에서 ‘총괄 설계 조정자’로서 다시 태어나야합니다. 이는 탄핵과 상관없이, 정치 일정과 무관한, 중대한 국가운영시스템 개혁의 과제입니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이 문제를 제기할 예정입니다. 또한 전문가들과 함께 국회에서 이에 대한 제안을 할 예정입니다. 상황을 보아 구체적인 것은 알려드리겠습니다. 계속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바쁜 일을 하다보면 중요한 일을 미루게 된다.” 피터 드러커의 말입니다.
기재부 개혁, 재정거버넌스의 개혁은 우리 미래를 위해 중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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