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장렬의 미디어칼럼 <15> AI 지브리 그림, 누구의 창작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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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장렬의 미디어칼럼 <15>
AI 지브리 그림, 누구의 창작물인가?
▲ AI가 사진을 지브리풍으로 만든 그림
윤장열 (언론학자)
최근 AI가 만들어내는 '지브리풍' 그림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을 업로드하고 특정 스타일을 선택하면, 이미지가 마치 만화의 한 장면처럼 바뀐다. 초현실적인 풍경 속에 아이와 마법의 숲이 등장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색감, 어딘가 익숙한 정서가 담긴 장면이 탄생한다.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감성, 그리고 누구나 클릭 몇 번으로 이런 ‘예술’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기술적 경이로움이 놀랍다. 하지만 동시에 따라붙는 질문이 있다. “이거, 저작권 침해 아닌가요?”
실제로 AI가 만들어낸 지브리 스타일 그림은 법적으로 ‘지브리 그림’이 아닐 수도 있다. 현재 저작권법은 ‘스타일’ 자체는 보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단지 그 이미지가 닮았느냐의 여부를 넘어선다. AI가 이러한 스타일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실제 지브리의 원작 이미지가 무단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생성된 그림이 특정 영화의 장면을 연상시킬 정도로 유사할 때는 2차적 저작물 작성으로 판단될 수 있다.
이처럼 AI 생성물의 저작권 문제는 단지 기술의 발전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이것은 곧 ‘누가 창작자인가’, ‘무엇이 창작물인가’라는, 저작권법의 근본적인 질문으로 연결된다. 더 나아가, AI 이미지가 유튜브 썸네일, 전시 콘텐츠, 굿즈, 책 표지 등 상업적 콘텐츠로 다양하게 활용되는 상황에서, 창작자의 권리와 윤리의 경계는 더 큰 논란의 중심이 된다.
이 질문은 언론사 기자의 창작물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현재 한국의 저작권법 체계에서는 기자가 작성한 기사도 ‘업무상 저작물’로 간주되어, 특별한 약정이 없다면 그 저작재산권은 회사에 귀속된다. 기자는 분명 콘텐츠를 직접 창작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물에 대한 권리를 소유하지 못한다. 이는 언론사의 운영 편의를 위한 장치로 설명되지만, 그 이면에는 기자의 창작자적 지위와 권리를 구조적으로 배제한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사는 사규나 고용계약을 통해, 기자가 자신의 기사에 대해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자신의 기사로 책을 내거나 외부 강의에 활용하는 것도 자유롭지 않으며, 제3자가 기사를 2차 창작해 수익을 올리더라도 그 권리는 회사에 귀속된다. 기자는 콘텐츠 생산자이자 창작자인 동시에, 결과물에 대한 통제권이 전혀 없는 존재가 된다.
해외 사례를 보면, 독일과 프랑스는 기자 개인에게 저작권을 인정하면서도 언론사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이용권’ 중심의 체계를 운영한다. 미국도 고용 창작물 원칙을 따르지만, 계약을 통해 저작권 귀속을 명확히 조정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이러한 유연한 구조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언론사 중심의 경직된 법제도로 인해 기자의 권리 인식 자체가 희미한 상황이다.
오늘날 뉴스 콘텐츠는 플랫폼에 의해 빠르게 소비되고 사라지지만, 그 기사를 만든 기자의 노동은 여전히 치열하고 창의적이다. 기자가 단순한 정보 수집자가 아니라 사회를 해석하고 역사를 기록하는 창작자임을 사회적으로 인정하려면, 법과 제도가 재설계되어야 한다. 최소한 공동 귀속 구조, 기사 활용에 따른 보상 체계, 아카이빙에 대한 자율권 등은 제도적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지 한 직업군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넘어, 표현과 언론의 자유와 창작의 정당한 대가라는 민주적 질서를 회복하는 일이다. 기자도 창작자다. 그리고 모든 창작자에게는 창작한 결과물에 대한 권리가 정당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그 시작이 바로 기자의 저작재산권 인정이다. AI가 만든 그림을 보면서 기자의 저작권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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