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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부 히고니의 텃밭일기 <20> 토끼몰이와 용의검사

입력 : 2017-12-15 15:19:00
수정 : 0000-00-00 00:00:00

도시농부 히고니의 텃밭일기 (20)

 

토끼몰이와 용의검사

 

전교생이 조그마한 야산을 둘러싸고 토끼를 몰았다. 산토끼가 없을 법한 동산에서 토끼는 뛰어 나왔고 그날 선생님들은 토끼탕으로 회식을 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오늘처럼 눈이 내려 쌓이면 골방에 수수대 울타리를 두른 고구마를 두어개를 가방에 챙겨넣고 가다가 눈속에 고구마를 박아 놓는다. 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출출한 뱃속에 들어가는 시원하고 달큰한 고구마맛을 잊을 수 없다. 그 때는 눈도 많이 오고 쉽게 녹지도 않았다. 오늘이 대설이라네.

 

교실바닥은 나무판자, 실내화도 없이 구멍난 나이롱 양말 뒷꿈치로 칼바람이 불었다. 조개탄 난로옆 아이는 얼굴이 벌개졌다. 사타구니의 이들은 밤을 기다리나 보다. 구석쪽 아이는 창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내복과 교복처럼 입었던 츄리닝으로 버틴다. 4교시에는 난로에 도시락 탑이 쌓아지고 밥이 눌는 냄새와 김치 익어가는 냄새로 교실은 수업 분위기가 아니다. 도시락 반찬으로 기름소금을 갖고다닌 친구도 있었다. 지금의 라면 스프 비슷했을까? 그냥 차라리 밥을 굶고 수돗물만 배터지게 먹어? 말어?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그때 굶은 밥은 어디가서 찾아먹나?

 

눈 쌓인 산에는 산토끼의 발자국이 어지럽다. 철사로 올가미를 만들어 토끼가 다니는 길을 막고 올가미를 설치해 토끼를 잡아 팔았다. 천원. 가죽은 백원. 북조선의 외화벌이처럼 겨울에는 토끼나 잡아야 돈이 생겼다. 그마저 경쟁자가 많아 한 마리 잡는 일도 쉽지 않았다. 나이 들어 토끼몰아 하루 두 마리도 잡고, 올가미를 설치해 몸보신을 하기도했다. 날마다 산에 가서 땔나무를 해야하는 것은 모두의 숙제였다. 그래서 아들이 많아야(?)했다. 지게를 지고 산으로 산으로 눈이 와도 산으로... 지게 다리 작대기로 두들기며 신세 한탄 노래를 불러댄다. “녹슬은 철길을 달리는 인생아!” “농사 짓기 싫음 공부해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구호다.

장작이라도 많이 해두어야 따순 겨울을 날 수 있다.

 

이런 추운날에도 전교생을 운동장에 모아놓고 교장 선생님은 길고 긴 엿가락보다 더 긴 훈시를 했고 코를 흘리고 사시나무 보다 더 떨 때쯤 용의검사를 했다. 윗통을 벗기고 때검사를 했다. 일부 몰지각한 교사는 등에 용의불량이라고 쓰고 전교 교실을 돌게해서 자존심이 상처 받았다. 평생 그 선생을 저주했는데 고생해 돈 많이 벌어 벌써 천국에 갔다. 여학생들은 윗통을 벗기는 대신 배만 살짝 들어올렸다는... 우우..

지금 같으면 파면감?

 

안개가 더 짙어졌다. 어제는 가만히 세워놓은 차를 지나가는 차가 받아 부셔놓았다. 다행히 사람이 다치지는 않았다. 막걸리도 마시지 않았고 티비도 켜지 않았다. 올겨울은 책만 보는 바보가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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