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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오해 ㊻ 임진강 별곡

입력 : 2016-08-20 18: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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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 별곡

 

집 뒷동산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면 임진강이 봄날에는 은박지로 만든 띠처럼 반짝이며 흐르고 가을날 해질 녘에는 노을이 그 강물 위에 진홍물들인 비단 띠가 되어 흐릅니다. 그리고 봄날 아침이면 그 임진강을 건너서 수많은 철새들이 날아오고 가을날 저녁이면 그들이 돌아갈 때 부르는 노래 소리가 하늘에 가득합니다. 내가 고향이 아닌 이곳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은 데에는 분단의 상처를 가장 직접적으로, 가장 많이 안고 있는 곳이 파주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70년이면 한 사람의 평생이고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입니다. 그 세월 동안 파주가 안고 있던 분단의 상처가 가까운 장래에(나의 살아생전에) 아름답고 귀한 보석으로 평가받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잘 보존된 임진강물과 비무장지대의 숲―이곳에 평화가 찾아온다면 70년 동안의 상처는 빛나는 유산으로 변모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격렬하고 오랜 지각활동 속에 갇힌 탄소가 다이아몬드로 응결되어 나오듯이....

 

2004년 겨울에 집을 지어 이곳에 정착했습니다. 이사 온 다음해에 남북 양쪽의 비방방송이 멈추었습니다. 집 앞 자유로 그 길을 따라 어느 기업집단의 회장이 소떼를 몰고 북쪽 고향을 다녀왔고, 어느 대통령은 그 길 위에 노란색 페인트로 표시된 경계선을 걸어서 넘어 북으로 가 그쪽의 최고위 정치지도자를 만나고 왔습니다. 그리고 북쪽 공단을 오가는 화물차들이 아침저녁으로 자유로 그 길 위를 바삐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2년이 지난 지금 전보다 훨씬 성능이 좋아진 확성기를 동원한 양쪽의 비방 방송이 재개되었고 북쪽을 오가든 화물차의 행렬은 끊어 졌습니다. 한 쪽은 쏘겠다고 위협하고 다른 한쪽은 그래, 쏘기만 해봐라 하며 서로 노려보고 있는 형국입니다. 참 쓰기 거북한 표현이지만 자해공갈단끼리 기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같은 피를 나눈 형제라 하더라도 독립된 가계를 이루고 다른 방식의 삶을 오래 동안 살다보면 어린 시절의 형제애만으로는 이해하고 포용하기가 어렵습니다. 제도와 이념을 달리하여 한 세기 가까이 서로 적대하며 유지되어온 정치적 실체라면 하나로 합쳐지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무엇입니까? 그 구성원들에게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해주고 미래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어야 하는 것이 국가의 기본 소임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는 납세와 병역의 의무를 기꺼이 지지 않습니까? 그리고 정치가는 왜 존재입니까? 정치가의 최종 목표는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지만 그 권력은 어떤 것이어야 하며 그 과정은 어떠해야 합니까? 정치가는 정직해야하며, 시민을 불안하게 하거나 눈물 흘리게 해서는 안 되며,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해주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70년 동안 남쪽이나 북쪽이나 가릴 것 없이 정치지도자들이 책무를 다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70년이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그들은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가지고 마땅히 했어야 할 중요한 책무를 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입만 열면 정치적 공세하지 마라, 정치적 술수부리지 말라면서 정치를 몹쓸 물건인 것처럼 폄하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불결한 게 정치라면 왜 그걸 하겠다고 나섰습니까? 백성이 원하는 바를 물어보고 그걸 실현하는 것이 정치입니다. 정치가 여러분, 바로 그런 정치적 공세를 열심히 펼치시고 그런 정치적 술수를 마음껏 부리십시오.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지금도 임진강물은 맑게 흐르고 아직도 저녁노을은 임진강물 위에 곱게 내려앉기 때문입니다. 임진강을 건너 철새는 금년 봄에도 왔고 금년 가을이면 다시 돌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글 박종일(지혜의 숲 권독사)

 

 

 

 #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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