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권연대 발자국통신 - 조세희 선생이 남긴 각성과 연대의 메시지

입력 : 2023-01-04 02:34:41
수정 : 0000-00-00 00:00:00

조세희 선생이 남긴 각성과 연대의 메시지

 

                  오인영 / 인권연대 운영위원/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

 

 

조세희 소설가(사진출처 : 경향신문)

 

2023년 새해가 밝았다. 그러나 청명한 자연의 하늘과 달리, 우리 사회의 하늘은 어둡게만 보인다. 윤석열 정권에 의해 정치 분야만이 아니라 노동, 인권, 복지, 외교, 문화 등 거의 사회 모든 분야에서 역사적 퇴행이 일어나고 있다. 시대 상황은 위중하기만 한데 그것을 극복할 길을 잘 보이지 않는 듯하다. 역사의 퇴행이 빚어내는 생명 위험과 생활 위기를 돌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궁리하다가 지난 성탄절에 돌아가신 조세희 선생이 2009121일 용산참사 현장에서 하신 발언이 떠올랐다. 13년 전의 말씀이지만 각성과 연대를 촉구하는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할 뿐만 아니라 ‘1029참사를 떠올리면 더욱 절절히 와닿기에, (추모의 마음까지를 담아) 조세희 선생의 발언 요지를 여기에 소개한다.

 

저는 조세희라고 합니다. 저를 잘 모르실 분들이 많을 텐데 저는 본래 나약하기 짝이 없는, 연약한 작가입니다. 30년 전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철거민, 슬픔, 아픔, 고통에 대해서 썼던 사람입니다. (중략)

내가 []을 처음 쓸 때는, 우리가 살아야 되는 미래가 아름답기를, 그리고 슬프지 않기를, 모든 것이 평화롭고, 평등이라는 말까지, 거기에다 민주주의라는 말까지, 그래서 고통이 어느 한쪽으로만 집중이 되는 걸 막을 생각으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글을 썼던 것입니다. (중략)

20051115일까지는 제가 현장에 늘 카메라를 갖고 나왔습니다. 그것은 제가 한 사람으로 시민으로서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기록하는 데 자료를 얻을 겸, 그리고 현장에서 싸우는 분들에게 머릿수 하나를 첨가하는 마음으로 참여했습니다. 그것이 20051115일 전용철 농민이 돌아가시는 현장에서 저도 상처를 입고, 아프고 카메라 다 망가지고, 그 이후에 병이 들었습니다. 그 뒤에 현장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현장에서 투쟁하는 분들에게 늘 미안했습니다.

지금 또 나온 이유는, 나와서는 안 될, 못될 정도의 건강인데도 나왔습니다. 그것을 왜 그러냐 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 지금 2001년 새 세기가 박정희 때부터 시작된 그 군부 치하에서 낙원으로 설정이 돼 있던 땅입니다. 제가 늙어서 도착한 곳이 낙원이어야 되는데, 제가 듣는 이야기는 이 세계, 천몇백 인종, 이백여 나라, 그 많은 국가 중에서 제일 미개하고 제일 흉하고 제일 폭력적인 그 힘에 의해서 이 세상에서 제일 귀중한 생명 여섯이 희생을 당했다는 그 앞에서, 어떻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잠 못 자고 아픈 몸으로 지금 나온 이유는 어떻게 하면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까 하는 고민 끝에 여러분을 뵙고 한 말씀만 드리려고 이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중략)

내가 []을 처음 쓸 때, 우리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한 아이가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배고파 운다면, 그것을 놓아두고 잠자는 우리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고, 그것이 곧 폭력이라고 썼습니다. 그 말을 지금에 적용해보면, 우리 개개인이 얼마나 얼마나 큰 폭력을 경찰들 못지않게 쓰고 있습니까. 경찰의 우두머리가 쓰는 폭력과 우리가 쓰는 폭력은 얼마나 다릅니까.

우리는 무지에서 깨어나는 순간, 우리 미래의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말씀드릴게요. 지금 주위가 어렵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민족은 지금 캄캄한 밀림 속에 들어가 갇혀 있습니다. 앞이 안 보입니다. 우리 개개인이 나침반을 지녀야 됩니다. 우리 머리 속에 나침반을 넣어 둡시다. 그리고 우리는 지도를 가져야죠. 우리 민족은 지금 지도도 없고, 나침반도 없고, 앞길도 없는 길을 자연적인 상태에 맡겨 둔 채 그냥 갑니다. 어떻게 해결되겠지. 하늘이 무너져도 살아날 구멍이 있다, 이런 생각 하죠. 하늘이 무너지면 다 죽습니다. 선진국 제1세계에, 유럽 어느 나라의 속담에 하늘이 무너지면 살길이 없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 속담은 뭐냐 하면 '하늘이 무너지면 파랑새를 잡자' 그랬습니다.

우리는 여섯 분의 이 귀중한 생명을 가슴에 새기고 그들의 절망, 그들의 가족, 그리고 그들의 동지인 여러분 개개인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서 우리의 무지에서 벗어나서, 밀림에서 벗어나서, 밀림 다음에 나타나는 넓은 개활지를 발견하도록 합시다. (중략)

밝음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새겨야 될 것은 그거죠. 우리가 밝음을 가져야지요. 저는 작은 촛불 하나를 가지고 왔습니다. 중국의 위대한 노신이라는 작가가 말했죠. “큰 횃불 나오기 전에 우리는 작은 촛불이라도 들러 나왔다”. 조세희가 그렇습니다. 여러분께 제가 이야기합니다.

우리 연대라는 말을 그냥 쉽게 합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다 연대의 힘, 우리 사랑의 힘, 평등의 힘, 자유의 힘, 이것을 우리가 소유하도록 합시다. 당신이, 여러분이 이성과 힘 두 가지를 다 가질 수 없다면 당신, 여러분은 이성을 갖고 적들에게는 힘을 주어버리자. 적들은 그 힘으로 전투에서 이길지는 몰라도, 전쟁에서는 이길 수가 없다. 적들은 힘으로 이성을 만들 수 없지만 우리는 이성으로 힘을 만들 수 있다. 이 말을 간단히 줄이면 우리가 전쟁에서는 이긴다는 것이죠. 이것을 적들에게 전달하도록 합시다."

 

끝으로 조세희 선생이 11년 전 인권연대 12주년 창립기념식에 참석해 야스퍼스를 인용하며 현실에 대해 모두가 공동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역설한 말씀과 천정환 교수의 경향신문 칼럼(조세희 연말221229)에도 인용된 [난쏘공]의 한 대목을 옮겨 적으며 새해 새날, 새롭게(혹은 새삼) 밝음을 향한 의지를 추스른다.

 

인간과 인간들 사이에는 연대감이 존재하기 때문에 개개인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잘못과 불의, 저질러지는 범죄에 책임을 져야 한다. 악을 저지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그에 대한 책임을 같이 나눠지게 된다.”

 

이 시간부터 우리 가슴에 철 기둥 하나씩을 심어 넣자. 무슨 일이 있어도 쓰러지지 않을 철 기둥을 박아두고 어떤 어려움이 와도 버텨내면서 빛이 보이는 곳으로 달려가야 한다.”

 

출처 : 인권연대 발자국 통신

 

 

 

 

 


신문협동조합「파주에서」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