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과 착오의 학교 ㉑ ‘보기’란 고차원의 수련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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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과 착오의 학교
볼 시(視), 다닐 행(行), 어그러질 착(錯), 깨달을 오(悟)라고 해서 각자의 행동을 관찰하고 삶의 어그러진 곳을 깨닫기 위한 배움터라는 의미입니다. 생활하면서 발생하는 시행착오를 발판삼아 좀 더 건강한 삶을 만들어가는데 도움이 되는 글을 나누고자 합니다.
‘보기’란 고차원의 수련법
번잡한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교외의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한동안 잊고 지냈던 별빛들이 인사를 건넨다. 누구나 찾을 수 있는 북두칠성과 이맘 때 가장 잘 보이는 오리온 등 별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 다른 빛깔을 자랑한다. 하지만 잘 알려져 있듯이 지금 보이는 빛은 지구로부터 거리에 따라 수십 년, 수백 년 전 혹 그보다 훨씬 전에 있었던 잔상일 뿐이다. 지금은 다른 별이 되었거나 아예 별 자체가 사라졌을 수도 있다. 매일 아침 떠오르는 태양도 항상 8분 20초 전의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 보이는 별빛이 별의 과거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증명되었듯이, 블랙홀처럼 중력이 강할수록 시공간은 굴절된다. 마찬가지로 지금 관측되는 별빛도 지구까지 도달하는 동안 이미 수없이 굴절되어 본래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있을 수도 있다. 단지 우리 눈에 그렇게 보이기에 이렇게 생겼을 거라고 추측할 뿐, 사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믿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천문학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사람의 눈에서도 적어도 다섯 번의 빛의 굴절현상이 발생한다. 각막을 덮고 있는 눈물층에서 한 번, 각막에서 한 번, 각막과 수정체 사이에 있는 수분층(전방수)에서 한 번, 수정체에서 한 번, 마지막으로 유리체(초자체)에서 한 번. 이렇게 꺾이고 꺾여 망막(정확히는 황반)에 맺히는 상(像)을 시신경이 포착하여 이미지로 그려낸다. 굴절이 구조적으로 가장 크게 일어나는 수정체만 보더라도 굴절률이 1.44~1.55이니 눈에 보이는 것이 실제 모습과 얼마나 다른지 짐작해볼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굴절은 눈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망막에 맺힌 상이 시신경을 따라 후두엽을 중심으로 두뇌 각 부위로 전달되는데 이때 정보의 교란이 일어난다.
전달된 시각 정보를 지난 기억으로 덮어버리거나 지레짐작으로 속단하거나 아예 수신하지 않기도 한다. 편견(偏見)이 바로 이런 것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기 싫은 것은 무의식적으로라도 무시(無視)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 보는 것. 자기관점 외에는 인정하지 않는 고집과 집착이 보는 것과 보이는 것 모두를 왜곡한다.
불가에서는 이를 ‘무명(無明)’이라 한다. 마치 블랙홀이 무한대의 중력으로 시공간을 굴절시키고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나(我)라는 고정관념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게 되면(중력이 증가하면) 명백히 드러난 실체일지라도 곡해해버리는 눈 뜬 장님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차(視差)로 인해 인체는 외부와 상응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굴다가 몸과 마음에 질병이라는 생채기가 나게 된다. 이렇듯 ‘보기’란 단순히 형태와 색상을 감각하는 것을 넘어, 편견과 집착을 버리고 사실 그대로를 관찰하여 자연과 상응하는 고차원의 수련법이다.
카페 방하 봄동 한의원 유창석 한의사
#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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