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모자 농부의 맛집탐방 (56) 광탄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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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이북 유일한 ‘파주대장간’
3년 전에 <대장장이와 호미곡선>이라는 전시를 기획하며 가끔 들르던 곳이 광탄에 있는 ‘파주 대장간’이다. 한강 이북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파주 대장간으로, 한근수 대장장이 60년 세월의 흔적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공간. 이 곳에 들르면 재미있는 것들이 한 둘이 아니다. 철커덕 가위 소리가 들리는 듯 엿장수 가위가 걸려있기도 하고, 쇠스랑, 선호미, 삽괭이, 곡괭이, 호미, 낫 등 농기구 박물관 같기도 하다. 모루 위에 두드리다 만 자루 없는 낫이 수북이 쌓여 있어 정겹다. 한창 좋은 시절인 1960~70년대에는 광탄 장날에서 하루에 이 만 개 씩 호미를 팔았다고 한다. 지금은 일 년에 낫을 이백 개 정도 만드신다고 하는데 농사도 비닐 멀칭으로 농기구 쓸 일이 적기도 하지만, 값싼 중국제가 판을 치니 비싸게도 팔 수가 없다고 하신다니 안타깝다.
지난 달에 한 대장장께 모종 삽을 만들어주십사 했더니, 흔쾌히 만들어 주셨다. 잘 두드려 만드신 모종삽이 묵직하니 맘에 꼭 든다. ‘장인이 만든 모종삽으로 농사 짓는 도시 농부는 아마도 내가 최초가 아닐까?’ 생각하니 어깨가 으쓱해진다. 누구든 무쇠 모종삽으로 텃밭 농사를 잘 지으면 좋겠다.
‘광탄국수’ 대표메뉴 도토리가루로 반죽한 수제비
이곳에 오면 선생님과 점심 식사를 늘 같이 하는데, 한결같이 안내하는 곳이 바로 옆 집 ‘광탄 국수’이다. 가끔 토종 된장찌개를 먹기도 하는데, 그래도 이 집의 대표 메뉴는 얼큰 수제비와 들깨 수제비이다. 어디에서도 먹을 수 없는 수제비라 언제 먹어도 맛이 있다.
색깔이 약간 거무스름해 통밀 가루로 수제비를 뜨나 물었더니, 가을 뒷산에 떨어진 도토리를 한 가마씩 주워와 가루 내어 밀가루 반죽에 섞어 쓴다고 하셨다. 그 맛이 구수하고 쫄깃하여 별미 수제비가 된다. 얼큰 수제비는 호박, 감자, 숭덩숭덩 먹음직스럽게 썰어 넣고 직접 만든 고추장을 살짝 풀어 끓이는데, 먹으면 땀이 나도록 속이 확 풀어진다.
들깨 수제비는 영양 수제비이다. 사위도 안 준다는 요새 햇부추를 길쭉길쭉하게 듬뿍 썰어 넣고, 감자와 함께 한소끔 끓인다. 도토리가루 반죽을 아주 얇게 손으로 뚝뚝 뜯어 넣고 들깨 가루를 넣고 팔팔 끓여낸다. 고소한 들깨 냄새와 수제비 씹을 때 살짝 떫은 도토리 향이 입안에 가득 퍼지는 맛이 이 집의 대표 들깨 수제비이다.
마을분들 밥상차린다는 마음으로
한근수 대장장은 30년이 넘도록 오랜 세월 이웃으로 살아온 전옥희 사장님의 맛깔스러운 음식 솜씨에 늘 칭찬이시다. 직접 텃밭에서 키운 것으로 된장, 고추장을 담그고 양념거리 장만한다. 오늘은 가을에 갈무리한 고추에 풀을 발라 말려 기름에 튀겨 반찬으로 내었는데, 자꾸만 더 달라기가 미안할 정도로 많이 먹었다. 이곳에 오면 시골 외갓집에 온 기분이다. 올 때마다 있는 거 없는 거 모두 밥상 위에 오르니 반찬이 늘 새롭기만 하다.
“요즘 장사가 잘 되시나요?”
“이 식당 일은 장사라고 생각해서 이문이나 마진을 따지면 못해요. 언제든 저희 집에 오시는 손님을 대접한다는 마음으로 온 마음을 다하고 일하지요. 마을 분들의 아침 저녁을 차려 드린다는 생각으로 밥상을 차립니다.”
나의 어리석은 질문에 참으로 소중하고 귀한 현답이다.
#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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