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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모자 농부의 맛집탐방 (63) 장파리의 강변 매운탕

입력 : 2017-07-27 15: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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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십년은 족히 되었을 성 싶다. 헤이리에서 회의를 마치고 파주에서 가장 맛있는 매운탕집을 소개하겠다는 아트팩토리 황관장의 안내로 간곳이 장마루촌이었다. ‘장마루촌의 이발사’라는 영화를 찍은 마을로 간판도 건물도 쇠락한 이발소와 신작로길 옆의 작은 교회와 한골목만 들어서면 집마다 꽃밭과 무성한 텃밭이 있었다.

큰 마당에 덩그러니 비어 있었던 나락을 쌓아뒀다던 꽤 큰 농협 창고를 쌈지 미술관으로 만들고 싶었던 기억도 있고, 삼십년을 거슬러 가면 있을 법한 이 마을이 묘한 그리움의 분위기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었는데 눅눅한 장맛비에 뜨끈하고 칼칼하고 구수한 매운탕이 그리워, 해질 무렵 벌겋게 황토물 출렁이는 임진강물을 옆에 끼고 이곳 장파리에 왔다. 


장마루촌의 이발사

장마루촌의 이발사의 이야기는 이렇다. 마을에 사랑하는 두 연인이 있었다. 그때 남자배우는 신성일 여자는 김지미였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성일은 괴뢰군에 납치되어 구사일생으로 돌아왔고 다시 군입대하여 격전을 치르다가 성불구자로 고향에 돌아온다. 보고 싶었던 애인을 가까이 가지 못하고 멀리하는 성일의 뜨거운 사랑을 느끼고 지미는 다시는 헤어지지 말고 영원토록 사랑할 것을 사랑바위 앞에서 굳게 맹세하는 아름답고도 애달픈 사랑이야기이다. 원래 이 이야기는 ‘박서림’씨의 소설로 연속극으로 또 1959년과 1969년 두 번에 걸쳐 영화화 되었단다.





남편은 어부, 부인은 식당사장

 어째든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장파리의 ‘강변 매운탕 식당’을 찾아갔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안사장님은 장파리가 고향이고 태어나 여태 이곳에 살았고, 바깥사장님은 부산이 고향인데 어찌 어찌 하다 보니 이곳까지 오게 되었단다. 남편은 워낙 낚시를 좋아하여 임진강에서 살다시피 하다 본격적으로 배도 한 척 사서 어부로 변신하였단다. 아이들 공부 시키려고 자의반 타의반 남편이 잡아온 메기 쏘가리 황복, 장어, 참게 등을 잡아다 매운탕 끓여 판 것이 어느새 30년이 훌쩍 가버렸다는 김순희 사장님의 말씀이 왠지 이발사의 애닮은 사랑이야기와 겹쳐 부산 사나이와 장파리 처녀의 사랑이야기도 자못 궁금했었다. 


임진강 제철 곳간

요즘은 음식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뀐다. 그래서 슬로우 푸드 운동도 있고 먹거리 정의운동도 있다. 전에는 ‘음식을 잘한다’라는 것이 ‘요리를 잘한다’였는데 이제는 요리보다는 원재료에 대해 더 살피고 공부하는 분위기이다. 물론 재료를 알고 잘 다루면 좋은 음식을 만드는 건 당연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요즘 그 사실을 모두들 까맣게 잊고 사니 말이다​. 아무리 성능 좋은 첨단 냉장고가 있다한들 제철에 먹는 임진강 제철 곳간만 할까. 요즘은 참게 매운탕이다. 가을에 난 참게는 게장 담가 먹고 요즘은 참게 메기매운탕이 좋다. 강물이 불어 장어도 제법 잡힌다. 텃밭에 그득한 고추며 호박이며 가지 푸성귀 지천이어 쑥덕쑥덕 만든 맛 오른 야채의 밑반찬 맛이 그만이다. 양식도 모자라 수입이 지천인 이때에, 임진강 맑은 물을 살려서 자연산만 고집하는 강변 매운탕집의 바깥어부님이 계속 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응원한다.

참! 그 옛날 가장 융성했던 미군부대 시절 조용필이 노래했었다는 ‘라스트 찬스 클럽’의 흔적과 마을 곳곳에 붙여 있는 70년대의 사진과 마을 벽화들도 꽤 볼만하다.







#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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