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에 깃든 생명들 날 좀 봐요, 봐요! (39) 사미천에 꾸구리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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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미천에 꾸구리가 돌아왔다
임진강은 크고 작은 지류가 많다. 남한만 해도 연천 한탄강, 파주 눌로천, 문산천으로 임진강이 품는 큰 지류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북녘에서 흘러 내려와서 연천 장남에서 임진강과 만나는 사미천도 있다. 북녘 산악지역을 흐르는 임진강도 그렇지만, 사미천은 임진강 보다 더 물이 맑다. 2000년도 초반에 사미천을 접근할 수 있는 연천 장남면으로 여러 번 취재와 답사를 다녔다.
2004년 4월 22일, 우리가 간 곳은 사미천 중류쯤으로 임진강과 합수되기 직전 사미천교 아래다. 냇물이 폭을 넓게 잡고 흘러서 물이 안 깊다. 아이들이 물장구치기에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조심해야 한다. 비 온 뒤 큰물에 전쟁 때 썼던 폭발물이 쓸려와 다치는 사람이 더러 있다고 하니까. 북녘에서 지뢰가 떠내려올 수 있는 위험한 곳이다. 이곳은 돌이 많아서 물 흐르는 소리가 시원하게 들린다.
냇가에 차를 세워두고 준비물들을 내렸다. 짐이 많다. 족대, 투망, 새우망, 떡밥, 어항, 휴대용기포기, 양동이, 다슬기 수경, 뜰채, 낚시의자, 허리까지 오는 바지장화, 캠코더, 카메라. 이것들 모두 가지고 다녀야 한다. 짐을 한쪽에 풀어 놓았다.
물고기를 채집하기 위해 먼저 떡밥을 갠다. 깻묵과 떡밥을 섞어서 물을 조금 넣고 조물조물 반죽한다. 아기 주먹만하게 떼어서 새우망과 어항에 넣는다. 물이 슬슬 흐르는 곳에 던지고 끈은 돌이나 풀 나무에 묶어두고, 다른 데로 가서 족대질을 한다. 떡밥을 넣은 어항과 새우망은 한 시간 뒤에 건져보면 물고기가 들어가 있다. 혼인색을 띤 각시붕어 수컷과 산란관이 나온 암컷을 잡았다. 작고 귀엽다.
족대는 물가에 대고 풀 섶을 첨벙첨벙 밟아 물고기가 놀라서 나오면 뜬다. 물고기가 있을 만한 바위나 돌을 족대로 둘러치고 흔들어 대거나 돌을 치우거나 돌이랑 같이 뜨기도 한다. 그리고 물길 아래에 쫙 벌려서 대고 찰방찰방 뛰어서 몰면서 뜨기도 한다. 그러면 여울에서 노는 날랜 물고기는 싹싹 피해서 물살을 거스르거나 옆으로 빠져나가고 허둥대는 몇 마리는 그물 속으로 들어간다. 여울에서 뜰 때, 물고기 모는 사람은 잽싸게 몰아야 하고 또 뜨는 사람은 물고기가 그물에 들어오면 재빨리 족대를 들어야 한다.
족대질로 쉬리와 참종개, 돌고기, 대륙종개를 잡았다. 쉬리는 산속 계곡에만 사는 줄 알았는데 여기에 있는 것을 보니 사미천이 그만큼 물이 좋다. 참게도 돌 틈에 있다가 그물에 들어오기도 한다. 민물새우도 잡힌다. 한참 족대질을 하는데 처음 보는 빨간 물고기가 몇 마리 잡혔다. 취재를 안내한 어류연구자가 “꾸구리다. 꾸구리야”하고 소리쳤다. “이야, 사미천에 꾸구리가 돌아왔구나.” 탄성을 질렀다. 처음에는 작은 놈만 잡히더니 두세 마리씩 잡히기도 하고 새끼 손가락만한 것도 잡힌다. 배가 불룩한 것들은 암컷으로 산란기라서 알을 뱄다. 얼른 물가로 가져가서 어항에 넣고 사진을 찍고 기록했다. 물고기는 물 온도나 환경에 따라서 몸색이 변하기 때문에 잡아서 어항에 넣고 곧바로 사진 찍는다. 수온에 민감해서 잡아 놓으면 바로 몸색이 변하기 시작한다.
꾸구리 눈꺼풀이 있어서 눈을 옆으로 떴다 감았다 한다. 어두우면 눈꺼풀이 열고 밝으면 닫는다. 완전히 감을 수도 있고 컴컴한 곳에서는 눈을 똥그랗게 열 수도 있다. 눈이 꼭 고양이 눈처럼 생겼다. 눈을 감고 있다고 전라도에서는 ‘눈봉사’라고도 한다. 눈멀이, 소경돌나리라는 토박이 이름이 있다. 냇물에 사는 물고기는 지역마다 독특한 이름이 있다.
맑은 물이 흐르고 돌과 자갈이 쫙 깔린 여울에서 산다. 그래서 돌나리, 여울돌나리, 여울목이라는 이름도 있다. 물살에 안 떠내려가고 돌에 착 붙는다. 물살을 뚫고 이리저리 돌 위를 날래게 옮겨 다닌다. 주둥이 밑에 수염 세 쌍으로 돌을 집고 물살을 견딘다. 입가에 있는 수염은 밤에 더듬이와 같은 구실을 한다. 돌 틈을 이리저리 다니면서 돌에 붙어서 사는 날도래 애벌레 같은 작은 물벌레를 잡아먹는데, 이런 물벌레는 산소가 많은 여울에 많다. 꾸구리는 돌을 파고 들거나 집어야 하니까 수염이 발달한 것이다.
2003년 사미천에 왔을 때는 꾸구리를 못 만났다. 동행한 연구자는 냇가에서 공사를 한 뒤라서 오염에 약한 종들이 다 사라졌다고 했다. 사미천 상류 북녘으로 피신했다가 흙탕물이 빠지고 물이 다시 맑아지니 다시 남녘으로 내려와서 살게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녘 사미천 상류로 피신할 곳이 있어서 다행이다.
꾸구리는 우리나라 고유종으로 아주 드물고 귀하다. 한강, 금강, 임진강 상류와 강으로 흘러드는 지류에만 분포한다. 한강에는 영월과 평창에 살고, 금강 지류인 영동과 무주에 조금 분포한다. 무주에 있는 것은 보기가 아주 힘들어졌다. 북한에 있는 예성강에도 산다.
꾸구리는 하천에서 준설이나 바닥을 드러내는 공사를 하면 못산다. 중장비가 동원되는 공사로 돌에 흙이 잔뜩 끼고 산소량은 부족해진다. 아마추어 연구자들의 모니터링 조사에 의하면 4대강 사업 전에는 한강 상류 여주에도 개체수가 많았다고 한다. 수온, 산소량, 오염에 약해서 수질오염이나 하천 공사로 서식지가 파괴되면 멸종할 위험이 있다. 또한 꾸구리는 돌 틈에 알을 낳는데 냇가에 있는 돌을 건축 재료로 쓴다고 퍼 가면 알 낳을 곳이 없어진다. 도시에 건물을 세우기 위해서 강에서 모래와 자갈을 퍼가면서 우리 강에서 자유롭게 살던 물고기들은 멸종위기에 내몰렸다. 이제는 개발보다는 보전을 고민할 시대다. 다행히 환경부에서 꾸구리를 ‘멸종위기야생동식물 2급’으로 지정해서 보호하고 있다.
어류 소개꾼 이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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