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장 역사교실 (28) 기호학의 본산, 파산서원

기호학의 본산, 파산서원

정헌호(역사교육 전문가)

 

파평 용연에서 다시 적성 방향으로 얼마 쯤 가다 보면 파평우체국 못 미쳐서 왼쪽으로 작은 다리를 건너면 파산서원을 만날 수 있다. 파주가 고향이 아닌 사람은 파산서원이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 있겠다. 율곡을 기리는 자운서원이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파산서원은 누구를 기리는 서원인지 궁금해 할 것 같다. 파산서원은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서 제외된 47개의 서원 중 하나이다. 파산서원의 내력을 살펴보자.

                                                                             파산서원 원경(문화재청)

 

성수침이 죽우당을 짓고 우계에 정착하다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중종은 도학 정치를 표방하며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를 대거 등용하여 개혁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조광조의 개혁 정치는 기득권 세력인 훈구파의 “조광조가 왕이 되려 한다.”는 조작 사건으로 실패하였고,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 세력이 목숨을 잃거나 유배를 가게 되었다(기묘사화, 1519)이다. 조광조의 제자 성수침은 스승과 벗들이 사약을 받아 죽는 것을 보고 벼슬에서 물러난다.

“여보, 한양에서는 더 이상 못 살겠구려.”

“그럼, 제 친정이 있는 파산으로 가시지요.”

벼슬에서 물러난 성수침은 서울의 백악산 아래 청송당을 짓고 은거하다가, 결국에는 아내(파평윤씨)의 고향인 파산의 우계(현재 파산서원 있는 곳)로 이사한다.

 

                                                             파산서원 1933 동아일보

이이가 청송서원의 설립을 추진하다

성수침은 우계에 죽우당을 짓고 학문에 몰입하며 아들 성혼을 가르쳤다.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성혼의 학문은 날로 깊어졌고, 훗날 옆 마을에 살던 이이와 쌍벽을 이룰 정도가 되었다. 성혼의 벗인 이이는 선조 1년(1568) 청송 선생의 서원을 지어야 한다면서 인근 선비들에게 통문을 돌렸다. 성혼의 또 다른 벗인 이제신은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낸다.

“자네의 아버지(성수침)와 숙부(성수종)께서는 학문적으로 우열을 가릴 수 없다네. 두 분의 학문은 마치 송나라의 형제 유학자 정명도와 정이천의 학문처럼 빛나는 것이라네. 이제 서원을 세운다고 하니 율곡과 함께 상의하여 잘 처리하게나.”

이이는 여러 선비의 의견을 듣고 ‘청송서원’을 건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건축 공사가 늦어져 성수침의 위패를 봉안하지 못한 상태에서 임진왜란이 발발함에 따라 건물이 불타 버렸다.

 

서인들이 청송서원의 재건을 추진하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광해군이 집권한 뒤 동인이 득세하면서 퇴계 이황이 문묘에 종사되었다. 동인의 학문적 스승인 이황이 문묘에 종사됨에 따라, 서인은 자신들의 학문적 근원인 이이와 성혼을 기리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청송서원을 재건해서 성수침 선생 외에도 백인걸 선생, 성혼 선생, 이이 선생을 함께 모시자.”

“그렇게 되면 파산4현서원이네!”

서인들은 청송서원을 파산4현서원으로 재건하려고 추진하였다. 그러나 김장생과 같은 이이의 직계 문인들이 율곡 묘소 인근에 자운서원을 건립함에 따라 파산4현서원에 대한 논의는 중단되었다.

 

백홍우의 노력으로 파산서원으로 사액되다

청송서원의 재건은 서인들이 반정을 통해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옹립한 뒤에야 이루어졌다. 이이가 처음 주창한 이래로 60년이 지난 1628년(인조 6)에서야 서원이 건립되었고 성수침과 성혼의 위패가 봉안되었다. 그 후 파주의 선비들이 새로 즉위한 효종에게 청송서당의 사액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전하, 저는 파주에 사는 진사 백홍우라고 합니다. 청송선생과 우계선생을 함께 모신 서원과 율곡 선생을 모신 서원을 국가에서 인정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렇게 해서 1650년(효종 1) 청송서원은 파산서원으로 사액되었다. 그 후 숙종 때(1705) 백인걸의 위패가 자운서원에서 파산서원으로 옮겨져 추가 배향되었고, 정종 때(1785) 성수침의 동생이자 성혼의 숙부인 성수종까지 추가 배향되었다.

 

파산서원은 이이가 살아 있을 당시에 설립을 추진한 서원으로, 자운서원과 함께 기호학의 본거지로 평가해도 지나침이 없다. 더구나 흥선 대원군이 전국의 서원을 47개소만 남기고 모두 철폐할 때에도 훼철되지 않았기에 역사적 의미가 큰 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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