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장역사교실 (29) 적벽 앞에서 뱃놀이를 즐긴 선비들

문화재 명칭: 미수 허목 선생 친밀 암각문(파주시 향토 유적 제22호)

제목: 적벽 앞에서 뱃놀이를 즐긴 선비들

정헌호(역사교육 전문가)

파산 서원에서 나와서 다시 좌회전을 하여 적성으로 들어간다. 적성 면사무소가 있는 곳에서 임진강 방면으로 자회전하여 가면 두지나루에 이르게 된다. 이제껏 자동차로만 여행을 했는데 이번에는 배를 타고 가서 옛 사람을 만나 보자. 두지나루에서 황포돛배를 타면 비록 짧지만 임진강 뱃놀이를 즐길 수 있다.

고려 시대 문인들이 임진강변에 거주하다

두지나루 앞을 지나 흐르는 임진강은 강의 북안과 남안의 기암들을 침식시켜 적벽이라는 절경을 만들어냈다. 요즘에는 자장리 적벽, 장좌리 적벽, 원당리 적벽, 고랑포 적벽과 같이 그곳의 지명을 붙여 구별하기도 한다. 기암 괴석과 맑은 물이 어우러진 이곳에 고려 시대의 유명한 문인들이 거주하였다. 고려 말의 3은 중에서 도은 이숭인이 지포에 거주하였고, 목은 이색 또한 임진강 인근에 살았으며, ｢국순전｣, ｢공방전｣이라는 가전체 소설을 남긴 임춘도 동포라는 곳에 살았다.

이색이 장좌리 적벽에 글을 새기다

목은 이색이 철쭉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봄날 동자를 데리고 고랑포 부근에서 뱃놀이를 하며 시를 지었다.

푸른 병풍 가로 걸친 장단의 석벽 위에 / 비단을 펼친 듯 환하게 철쭉이 피었도다./ 장사꾼 배를 잠시 빌려 흐름 따라 내려가니 / 한 시절의 정경 모두 이름 붙이기 어렵도다.

이색은 또 다른 날 제자인 이숭인과 함께 임진강 뱃놀이를 즐겼다. 아마도 막걸리라도 한 잔 걸치며 흥겹게 놀았을 것이다. 장좌리 적벽에 이르렀을 때 이색이 말을 꺼낸다.

“자안아(이숭인의 자), 기암절벽이 아주 멋지구나. 우리가 놀다 간다고 흔적을 남기면 어떨까?”

“스승님 뜻대로 하시옵소서.”

이렇게 해서 그들은 장좌리 적벽에 글씨를 새겼다.

허목이 이색이 놀던 괘암에 찾아가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섰다. 그리고 약 300년이 흘렀다. 현종 9년(1668) 여름 한 선비가 연천에 머물던 허목을 찾아갔다. 허목이 삼척부사에서 물러난 뒤 사귄 정도형이라는 인물이다.

“선생님, 지금으로부터 3백 년 전에 이색, 이숭인, 임춘 선생 등이 임진강의 위아래에 살았는데, 임진강에서 뱃놀이를 즐겼다고 합니다. 강가에 사는 노인들에 따르면, 옛 선현들이 남긴 암각 글자도 있는데 볼만하다고 합니다.”

허목도 워낙 풍류를 좋아했기에 그 소리를 듣고 반색을 하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10여 명이 배를 타고 암각 글자가 있다는 곳으로 노를 저어 갔다. 괘암(卦碞)이라고 불리던 곳이다. 절벽을 이루는 바위가 강에 뿌리를 박고 있는 모양이 마치 걸려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허목이 괘암이라는 글자를 새기다

허목과 함께 뱃놀이를 하던 일행 중 한 사람(어부)이 괘암을 가리키며 말을 꺼냈다.

“어릴 때에 절벽 위에 올라가 보면 이끼 사이로 근근이 글자를 볼 수 있었는데, 지금 알아볼 수 없게 된 지가 벌써 60년이나 됩니다요.”

“아, 안타깝구나. 그러면 내가 표시를 해 놓아야겠다.”

허목은 글자가 있었다는 곳 아래에다가 ‘괘암( )’이라고 두 글자를 크게 쓰고 ‘미수서(眉叟書)’라 새기게 하여 고적임을 표시하였다. 그리고는 같이 온 사람들과 함께 술과 고기를 마음껏 즐겼다. 돌아간 뒤에는 ‘괘암제명기(卦巖題名記)’라는 글을 지어 그날의 일을 기록으로 남겼다.

황포돛배를 타고 적벽을 감상해 보자

옛날의 이름난 선비들은 임진강에서 뱃놀이를 하면서 적벽을 감상하였다. 가을이 되면 적벽 사이의 단풍나무가 형형색색으로 물들어서 더욱 볼 만하다. 임진강 출입이 극히 제한적이지만 이곳 두지나루에서 황포돛배를 타면 옛 사람들이 즐긴 뱃놀이를 경험할 수 있다. 마침 가을이 되었으니 황포돛배를 타고 임진강 적벽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괘암과 미수 허목 선생 친밀 암각문(파주문화원) 옛 선비들이 괘암 앞에서 뱃놀이를 하며 풍류를 즐겼듯이 황포돛배를 타고 임진강 적벽을 즐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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