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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장역사교실 (30)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발굴된 구석기 유적

입력 : 2017-10-25 13:57:00
수정 : 0000-00-00 00:00:00

 

문화재 명칭: 파주 가월리와 주월리 유적(사적 제389)

제목: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발굴된 구석기 유적

정헌호(역사교육 전문가)

 

황포돛배를 타면 적벽과 괘암은 물론 임진강 북안에 자리한 고랑포와 호로고루 성지를 멀리서 볼 수 있다. 하지만 고랑포와 호로고루는 연천 지역 유적이므로 기회가 되면 소개하기로 한다. 임진강뱃놀이를 끝내고 두지나루에서 빠져나와 다시 37번 국도를 타고 1.5km쯤 가다가 오른쪽으로 빠져서 주월리 마을로 진입해 보자. 주월리 마을에는 구석기 유적이 있지만, 동네 사람도 잘 알지 못한다. 네비게이션을 이용해도 엉뚱한 길로 가게 된다. 농로를 지나면서 물어물어 도착하였다(주월리 309번지, 가월리 산 95-6번지).

 

구석기인들이 수변생활을 하다

주월리 마을은 임진강이 북동쪽에서 흘러 내러와 북서쪽을 지나서 남서쪽으로 휘돌아 흐른다. 마을을 휘도는 임진강은 수심이 얕은 편이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주월리 마을에 가장 먼저 흔적을 남겼다. 흔히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동굴이나 바위그늘이 있는 숲속에서 주로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파주의 장산리·동파리·금파리, 연천의 전곡리·남계리·학곡리 등의 구석기 유적을 통해 볼 때 수변생활도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곳 주월리와 인근의 가월리에서는 구석기 유적이 대대적으로 발굴되었다.

 


임진강과 한탄강 주변의 구석기 유적(파주 가월리 유적 학술조사보고서

 

 

가월리에서 주먹도끼가 발굴되다

여보게, 이거 좀 보게! 주먹도끼야.”

전곡리의 주먹도끼보다 훨씬 세련된 것 같은데.”

가월리에서 유적을 발굴하던 학자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바로 주먹도끼가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주먹도끼가 맨 처음 발굴된 곳은 연천의 전곡리이다. 주먹도끼는 한쪽은 손으로 잡아 쥘 수 있고, 다른 쪽은 날카로워서 물건을 자르거나 땅을 팔 수 있는 작은 도끼이다. 처음에 주먹도끼 문화는 아프리카와 유럽 및 인도에만 분포하고, 동남아시아 및 동아시아에는 찍개 문화만 존재한다는 주장이 정설이었다(모비우스 학설). 모비우스의 주장은 구석기 시대에도 동아시아보다 유럽이 발달했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연천 전곡리에서 주먹도끼가 발굴됨에 따라 모비우스의 이론은 파기되었다. 그런데 파주 가월리·주월리 유적에서 전곡리의 주먹도끼보다 더 정제된 주먹도끼가 출토된 것이다. 주먹도끼뿐만 아니라 찍개, 긁개, 몸돌 등과 많은 박편 석기가 발굴되었다. 가월리와 주월리의 유적은 구석기인의 도구 제작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곳으로 평가되어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가월리 출토 주먹도끼(왼쪽, 문화재청)와 프랑스 생아슐 출토 주먹도끼(오른쪽, 위키미디어)

 

파주의 구석기 유적 관리 실태가 아쉽다

가월리와 주월리 유적은 면적이 41,590(12천 평)에 이른다. 하지만 찾아가 보면 이게 뭐야?” 하며 대부분 실망을 한다. 대부분 논과 밭 그리고 작은 숲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냥 지나치게 된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한 번에 유적임을 알 수 있도록 좀 더 정비할 필요가 있다. 연천군은 발굴되는 유적마다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기념관을 세우며 관광객을 모으려고 노력하는데 파주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구석기인의 삶을 상상해 보자

유적 관리 실태가 아쉽기는 하지만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해 보자.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가월리와 주월리에서 도구를 제작하고, 짐승을 사냥하고, 물고기를 잡고, 때로는 서로 싸우다가도 즐겁게 웃는 모습 등을 상상해 보라. 현대인과 질적으로 차이가 있겠지만, 수십 수만 년 전의 구석기인들도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느끼며 삶을 영위했을 것이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거나 고적 답사를 할 때 늘 하는 말이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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