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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장역사교실 (31) 육계토성은 백제가 쌓은 성

입력 : 2017-11-01 11:01:00
수정 : 0000-00-00 00:00:00

 

 

문화재 명칭: 파주 육계토성(경기도기념물  217)

제목: 육계토성은 백제가 쌓은 성

정헌호(역사교육 전문가)

 

주월리 마을에 들어왔으니 육계토성을 지나칠 수 없다. 초행자라면 육계토성을 찾아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정비되어 있지도 않고 자세한 안내판조차 없다. 아는 사람만 찾아간다. 도착해 보면 역시 또 실망이다. 현재는 모두 논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위치를 알려 주는 입간판이 없다면 성벽인지 둑인지 구별할 수 없다. 육계토성이라는 명칭은 토성이 자리한 곳이 육계동이기 때문에 붙은 것이다.

육계토성지(적성면 달빛길 562-85): 이 안내판마저 없다면

성인지 둑인지 전혀 알 길이 없다. 유적 관리가 아쉽기만 하다.

 

온조가 강의 남쪽에 위례성을 쌓다
고주몽의 아들인 비류와 온조는 배다른 형제인 유리에게 밀려서 고구려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비류와 온조는 한반도 남부로 내려와 각각 도읍을 정한다.
“나 온조는 강의 남쪽에 위례성(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십제’라고 할 것이다.”
 

'삼국사기' 백제의 건국설화에 따르면, 온조는 강의 남쪽에 위례성을 도읍으로 정하고 10명의 신하로 보필하게 하여 국호를 십제로 하였다(溫祚都河南慰禮城 以十臣爲輔翼 國號十濟).
온조가 위례성을 처음 지은 ‘하남(河南)’은 어디일까?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아직까지는 찾지 못하고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백제의 초기도읍지가 있던 강을 ‘한강’이라고 보고, 초기도읍지를 서울의 몽촌토성이나 풍납토성으로 간주하였다.

 

온조가 한수의 남쪽으로 위례성을 옮기다
그런데 ‘삼국사기’  온조왕 13년(기원전 6)에는 또 다른 기록이 있다.
“짐(온조)이 한수의 남쪽 땅을 보니 매우 비옥하구나. 그곳으로 도읍을 옮겨 오래도록 편안케 하려고 한다(觀漢水之南 土壤膏腴 宜都於彼 以圖久安之計).”
그리고는 실제로 한수 이남에 목책으로 성을 쌓고 이듬해에 도읍을 옮겼다. 처음 도읍을 정한 지 13년 만에 한수의 남쪽으로 도읍을 옮긴 것이다. 이러한 기록을 토대로 백제의 도읍지는 하북위례성과 하남위례성 두 곳으로 비정된다. 즉, 하북위례성은 맨 처음 도읍한 곳이고, 하남위례성은 13년 만에 옮긴 도읍지이다. 현재 하남위례성은 풍납토성이라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지만, 온조가 처음 도읍한 하북위례성의 위치는 쉽게 비정하지 못하고 있다.

 

육계토성이 세상 밖으로 나오다
 ‘삼국사기’ 에 따르면, 온조왕 13년(기원전 6) 백제의 영토는 북쪽으로 패하(예성강 추정), 남쪽으로 웅천(안성 추정), 서쪽으로 대해(서해), 동쪽으로 주양(춘천 추정)에 이르렀다. ‘삼국사기’ 의 기록만 보아도 육계토성이 있는 이곳은 백제 초기 영역에 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1993년 원광대학교의 윤무병(1924~2010) 교수가 육계토성을 거론하며 일제강점기 때의 지도를 제시하였다.
“풍납동토성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유적이 1곳 있는데 경기 연천 적성읍 서북방에 해당되는 임진강변에 위치하고 있다. 그 존재가 학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1/50,000 지도에는 육계토성지(六溪土城址)라고 표기되고 있다[출처: 경향신문(http://news.khan.co.kr) 2007. 05. 11.].  
윤무병 교수 비록 육계토성을 거론했으나 그 위치가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고 아무도 본 적이 없었다. 단지 지도상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다.

 

육계토성이 백제의 첫 도읍지로 평가되다
그런데 1996년 파주 일대에 엄청나게 많은 양의 비가 내려 홍수가 발생하였다. 주월리 일대가 홍수에 휩쓸린 뒤 토성의 흔적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수많은 토기 파편과 철제 유물이 나뒹굴었다. 이에 따라 경기도박물관과 한양대박물관에서 대대적으로 발굴 조사를 전개하였다. 조사 관계자들은 윤무병 교수가 지적했던 것처럼 육계토성이 서울의 풍납토성과 구조상 여러 모로 비슷하다고 평가를 내렸다. 백제의 초기 도읍지인 하북위례성일 가능성도 제기하였다. 그러나 육계토성이 하북위례성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사실, 하남위례성이 서울의 풍납토성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고고학적 발굴과 역사적 기록을 토대로 볼 때, 육계토성이 백제의 초기도읍지가 아닐지라도 백제 때 쌓은 토성임에는 틀림이 없다.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담긴 곳인데 더 많은 연구가 진행되지 않고 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육계토성(분홍색 부분, 파주시청): 둘레 약 1.7km

 


 

육계토성지라고 표시된 일제 강점기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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