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에세이] 2016년 현충일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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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현충일 단상
중3 때던가
낙동강으로 낚시를 갔습니다.
모래무지는 낚시바늘만 들어가면 물고 나왔지요.
강낚시는 상류에 던져서 찌가 흘러가면 꺼내야 합니다.
물론 모래무지가 한마리씩 끌려왔지요.
졸지에 큰 남비 두 개를 채울 정도였지요.
열여섯짜리들이 매운탕을 끓여봤을까요?
암튼 끓이자는 의견이 우세해서
강둑에 있던 파밭, 마늘밭에서, 그리고 대문이 다 열린 집 장독대에서 된장과 고추장을 퍼다가
매운탕을 끓였습니다.
냄새는 그럴싸했습니다만,
아무도 그걸 입에 떠 넣지는 못했습니다.
간디스토마 이바구를 누군가 하는 바람에...
어쩌면 그 땐 친구들이 술안주가 필요한 때가 아니어서 그랬는지
강물에 기껏 끓인 매운탕을 부어버렸습니다.
그랬더니, 저 먼데서부터 은빛 몸통을 반짝이면서
거의 360도에서 몰려드는 물고기들의 잔치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 날,
교무실에서 호출이 있었습니다.
공교롭게 하루 전에 낙동강으로 낚시를 갔던 친구들이 오롯이 이름 불렸는데,
모두가 의아해 하면서 교무실로 갔습니다.
교무실 문을 열자마자 엎드려뻗쳐!
도덕선생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요.
죄명이 ‘현충일에 낚시를 했다’예요.
두 대쯤 ‘빠따’를 맞았지요.
그 정도에서 멈춘 것은 전교1, 2등하는 친구들이 함께 불려간 때문이지요.
늘 현충일이 되면 씁쓸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저 역시 이런 교육과 줄서기의 특혜에 기대고 살아오기도 했겠지요.
작은 해프닝이지만 강과 산을 호흡한 어린 친구들을 격려하지 못하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고,
더 어려운 것은 지금 열여섯되는 친구들은 그럴 의지도 그럴만한 자연도 없습니다.
과연 지금 아이들은 앞으로 40년 뒤에 어린 시절을 어떻게 기억할까요?
그나저나 그 매운탕, 먹을 걸 그랬지요.
지금은 낙동강에서 구할 수도 없는 귀한 음식인데 말이지요.
글 편집위원 김영수
#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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