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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 에세이] 2016년 현충일 단상

입력 : 2016-06-09 15:42:00
수정 : 0000-00-00 00:00:00

2016년 현충일 단상

 

중3 때던가

낙동강으로 낚시를 갔습니다.

모래무지는 낚시바늘만 들어가면 물고 나왔지요.

강낚시는 상류에 던져서 찌가 흘러가면 꺼내야 합니다.

물론 모래무지가 한마리씩 끌려왔지요.

졸지에 큰 남비 두 개를 채울 정도였지요.

 

열여섯짜리들이 매운탕을 끓여봤을까요?

암튼 끓이자는 의견이 우세해서

강둑에 있던 파밭, 마늘밭에서, 그리고 대문이 다 열린 집 장독대에서 된장과 고추장을 퍼다가 

매운탕을 끓였습니다.

 

냄새는 그럴싸했습니다만,

아무도 그걸 입에 떠 넣지는 못했습니다.

간디스토마 이바구를 누군가 하는 바람에...

어쩌면 그 땐 친구들이 술안주가 필요한 때가 아니어서 그랬는지

강물에 기껏 끓인 매운탕을 부어버렸습니다.

 

그랬더니, 저 먼데서부터 은빛 몸통을 반짝이면서

거의 360도에서 몰려드는 물고기들의 잔치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 날,

교무실에서 호출이 있었습니다.

공교롭게 하루 전에 낙동강으로 낚시를 갔던 친구들이 오롯이 이름 불렸는데,

모두가 의아해 하면서 교무실로 갔습니다.

교무실 문을 열자마자 엎드려뻗쳐!

도덕선생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요.

죄명이 ‘현충일에 낚시를 했다’예요.

두 대쯤 ‘빠따’를 맞았지요.

그 정도에서 멈춘 것은 전교1, 2등하는 친구들이 함께 불려간 때문이지요.

 

늘 현충일이 되면 씁쓸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저 역시 이런 교육과 줄서기의 특혜에 기대고 살아오기도 했겠지요. 

작은 해프닝이지만 강과 산을 호흡한 어린 친구들을 격려하지 못하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고,

더 어려운 것은 지금 열여섯되는 친구들은 그럴 의지도 그럴만한 자연도 없습니다.

 

과연 지금 아이들은 앞으로 40년 뒤에 어린 시절을 어떻게 기억할까요? 

그나저나 그 매운탕, 먹을 걸 그랬지요. 

지금은 낙동강에서 구할 수도 없는 귀한 음식인데 말이지요.

 

 

 

글 편집위원 김영수

 

 

 

#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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