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㉖ 고양 · 파주 필리핀공동체 정은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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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띠(큰언니)의 마음으로 이주여성들을 보듬어주세요"
필리핀 이주여성들 사이에서 ‘아띠"(큰언니라는 뜻)라 불리는 메리안 소바디(50) 씨, 한국 이름 정은주인 그녀는 25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다. 그녀는 한국에서 절망하고 있는 필리핀 동포들을 위해 10년 넘게 통역과 상담일을 해오고 있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에 온 결혼이주여성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따라 24시간 뛰어다니는 그녀를 만났다.
‘메리안 소바디"가 ‘정은주" 되던 날
2남4녀 중 둘째딸로 태어난 그녀의 집은 필리핀 보통의 가정이었다. 아버지는 땅을 소유하고서 쌀, 옥수수, 코코넛, 목화 등의 농사를 지으셨다. 어머니는 밭에서 나는 채소를 도매보다 한 푼이라도 더 받을 수 있는 소매로 시장에 내다 파는 일을 하셨다. 시따오(긴 콩), 칼라바사(호박) 등을 소매로 팔기 좋게 한 묶음씩 묶는 일은 어린 메리안과 동생들의 방과 후 일이었다. 그렇지만 어려운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한 숟가락을 덜기 위해 언니가 외할머니 댁에 보내진 후 메리안은 큰언니가 되었다. 새벽 4시, 엄마가 시장에 가시면 어린 동생들을 깨우고 준비시켜 학교에 보내는 등 집안일을 도맡아하는 메리안은 엄마에게 의지가 되는 딸이었다. 공부를 더 해서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던 메리안은 대학 3년을 중퇴하고 외국으로 돈을 벌러 떠나게 된다.
같은 마음으로 함께 건너온 열세 명과 한국에서 취업하면서 6년이란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30만 원 월급을 받으면 필리핀에 20만 원 이상을 보내며 타국생활을 힘겹게 버텼다. 6년 만에 돌아간 필리핀 집에서는 힘든 삶에 건강을 많이 잃으신 부모님과 잘 자란 네 동생들이 그녀를 반겨주었다. 그러나 고향에 돌아온 메리안은 한국에 두고 온 연인을 그리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남편은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에요. 처음 만났을 때는 필리핀에 돌아가고 싶어서 제 마음을 열지 못했지만 어느새 저도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죠."
한결같이 메리안을 아껴주고 챙겨주었던 한국인 허 모 씨와 메리안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렇게 메리안은 정은주가 되었다.
초교부터 영어교육 남녀가 평등한 필리핀
정은주 씨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왔다면 요즘은 한국을 동경해서 시집오는 경우가 많다. TV에 비춰지는 한국의 화려한 모습을 보고 어려운 현실을 떠나고자 불나방처럼 한국으로 오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러나 결혼이란 현실은 혹독하여 이들의 갈증과 열망을 채워주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필리핀과 한국은 모든 문화에서 차이가 크다. 필리핀은 스페인에 의해 327년간, 미국에 의해 44년간 식민지 생활을 한 까닭에 생활양식이 거의 서구화 되어있다. 필리핀에서는 elementary school(초등학교)부터 영어로 수업하고, 입식생활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남녀가 평등해요. 요리도 함께 하고, 빨래도 함께 하고, 청소도 함께 해요. 재산 상속 시에도 아들딸 구분 없이 똑같이 나누어 줘요."
한국에서 장남에게 재산을 몰아주는 게 이해가 안 된다는 그녀는 필리핀에서는 오히려 막내에게 더 많은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한다.
태어나면서부터 남성 위주로 돌아가는 한국사회는 필리핀 여성에게 낯설다. 남성의 권위가 공공연히 강요되는 한국에서의 삶은 자유롭고 평등한 남녀관계에 익숙하던 필리핀 여성들에게 답답하게 느껴진다. 한국여성에게도 강요하지 못하는 전근대적 가치관을 서구 사회의 가치관을 지닌 필리핀 아내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그녀는 말한다.
족쇄가 되는 서툰 한국말 소통이 사라진 가정
두 딸이 어느 정도 자라고 조금씩 한국생활에 안정되어 갈 즈음 정은주 씨는 개인 사업을 하면서 필리핀 노동자들의 사연과 접하게 된다. 슬프고 안타까운 그들의 사연에 등을 돌릴 수 없었던 그녀는 동포들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열혈아줌마가 되었다. 노동자들이 다치면 병원에 데려가고 한국인 보증이 없으면 치료를 받지 못하는 동포에게 병원비 보증을 서는 등, 그들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혼자 바쁘게 쫓아다니는 시간들이 시작되었다.
"어느 날 전화가 오는 거예요. 아띠, 나 잡혔어. 가슴이 턱 막히죠. 그렇게 단속에 걸리면 바로 수갑 차고 끌려가서 그대로 필리핀에 돌아가야 하거든요. 다시 한국으로 들어오기는 힘들어요."
계획했던 모든 것과 희망이 날아가 버리는 순간의 절망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강제 출국되는 노동자들의 비통함을 한국인은 절대 알 수 없을 거라며 내쉬는 그녀의 한숨이 짙고 깊다.
▲천주교이주민지원센터 '엑소더스'에서 대화하고 있는 정은주씨
그녀가 평화바람(현재 파주엑소더스센터)을 만나던 2007년, 고양ㆍ파주 필리핀공동체가 꾸려졌다. 정은주 씨는 공동체의 대표로 추대되어 오늘까지 물려받을 사람 없이 혼자서 많은 일을 감당하고 있다. 그녀는 한국말이 서툰 필리핀 사람들을 위해 통역하는 일을 주로 한다. 노동자의 경우는 한국말이 서툴러서 갈등이 깊어지는 예가 드물다, 업무에 관계되는 기본의사만 서로 소통하면 되기 때문이다. 가끔 필리핀 표준어인 ‘따갈로그어"가 사용될 때 그녀가 통역을 하게 된다.
반면 결혼이주여성들에게 능숙하지 못한 한국말은 커다란 족쇄이다. 감정을 교류하고 의견을 나누어야 하는데 남편과 시댁식구들한테 의사를 전달하지 못하니 가슴이 터질 것 같이 답답할 때가 많다. 이럴 때 이주여성들은 흔히 ‘아띠 메리안"을 찾는다.
운명을 개척해 가는 이주여성들의 강인함 존중해야
"특히 한국에서는 필리핀 여성을 돈을 주고 데려왔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들이 쓴 대부분의 돈은 중간역할을 한 사람에게 갔고, 사실 필리핀 친정에서는 딸을 결혼시키느라 오히려 빚을 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필리핀 여성들이 한국에 오면 자기 때문에 친정에 생긴 빚을 갚느라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런데 그 사정을 몰라주니 참으로 억울하죠."
필리핀 여성들이 한국에서 무시당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정은주 씨는 가슴을 친다. 1년 내 농사가 가능한 따뜻한 나라의 국민이 온화하고 낙천적 성품을 지닌 것을 ‘게으르다" 하고, 입식생활에 익숙하다 보니 구석구석 쓸고 닦는 한국식 청소에 서툰 것을 ‘지저분하다"고 하는 것은 상대에 대해 최소한의 이해도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외국여성을 아내로 맞아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긴 세월을 어떻게 살아가겠냐고 그러한 노력들이 한국여성과 결혼하면 필요 없는 일이겠냐며 그녀는 분통을 터뜨린다. 더욱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자 한국행을 선택할 정도로 강인한 정신을 지닌 필리핀 여성들에게 남편과 시어머니가 흔히 바라는 고분고분 순종적인 성향을 강요하는 것은 모순이다.
"한국여성과 결혼하여 서로 적응하는 시간이 3년 정도 필요하다면, 외국인 아내한테는 5년 정도를 기다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로의 문화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한국의 방식만 강요하는 한 필리핀 아내의 삶은 힘들 수밖에 없다. 사람의 삶에 한탄 섞인 얘기 한두 가지가 없을 수 없지만 물설고 낯선 한국에서 대부분의 결혼이주여성들은 좌표를 잃고 헤매고 있다.
▲일요일이면 동포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우리엄마는 필리핀 사람이에요" 두 딸과 함께 가는 ‘아띠"의 길
정은주 씨는 매일 아침 열심히 공장으로 출근한다. 내가 번 돈으로 마음 편하게 동포들을 위해 쓰기도 하고, 형제가 보고플 때 필리핀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동포들 근심을 다 털어낼 수는 없어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싶다는 그녀는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필리핀공동체 대표를 맡은 지 9년째, 동포들에게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무너지던 억장 때문에 그녀의 건강은 많이 나빠졌다. 걱정 많은 남편은 공동체 대표를 그만 뒀으면 하지만 물려받을 사람이 없다보니 그것도 여의치 않다.
"남편의 이해와 배려가 없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밤에도 새벽에도 남편은 언제나 ‘괜찮아, 다녀와"라며 제게 힘을 주죠."
정은주 씨의 웃음은 사랑받는 여인의 화사함을 담고 있다. 그녀를 살뜰히 사랑하는 남편과 당당하게 자란 은비(18), 은지(15)와 함께 행복한 그녀는 한국에 와있는 필리핀 동포들이 더 많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전한다.
▲미사가 끝나고 필리핀 신부님과 나누는 정겨운 대화
글 · 사진 이순기 기자
#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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