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땅굴 말고 철새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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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관광을 시작하는 농업법인 ‘파주미래DMZ’
▲노영대 다온숲콘텐츠연구원장이 공릉천 갈대숲 앞에서 철새 탐조 행사 참가자들에게 월동지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적잖은 이들이 ‘파주’하면 아픈 현대사와 연관된 DMZ, 임진각, 판문점을 떠올린다. 하지만 파주는 역사와 문화와 자연의 보고다. 임진강 언저리에는 삼국시대의 수많은 유적이 있는 곳,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의 묘소를 품은 곳, 멀리 러시아와 몽골에서 날아온 철새들이 겨울을 나는 곳이 파주다.
“이제는 안보관광지로 땅굴을 소개하던 시대를 지나 미래를 준비합시다”라며 파주를 생태관광, 역사 인문관광의 도시로 소개하고자 하는 이가 있다. 농업법인 ‘파주미래DMZ’의 윤도영 대표다. “나의 고향 파주의 역사와 문화와 자연을 국내와 해외에 자랑하고 싶습니다. 그 첫 번째로 준비한 것이 철새탐조행사입니다.”
1월 9일 문산행복센터에서 전세버스에 몸을 싣고 윤도영 대표가 선보이는 첫 번째 탐조행사에 따라나섰다. ‘임진강 철새 나들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번 탐조행사는 3월 30일까지 매주 토요일에 진행된다.
30여 명의 참가자가 처음 들른 곳은 자유로옆 산남 습지. “노랑부리저어새, 쇠기러기, 청둥오리가 보이시죠? 습지는 철새들을 천적으로부터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죠. 새들은 10월 말이나 11월 초순에 몽골과 러시아 북쪽 툰드라 지역에서 날아옵니다. 더 남하해서 천수만이나 해남으로 가기도 하고 이곳 파주나 철원에 잔류해서 겨울을 나지요.” 해설을 맡은 노영대 다온숲콘텐츠연구원장의 설명이 이어진다. “원래 이곳 문발리 습지는 재두루미의 월동지였습니다. 겨울에 2~3,000마리의 재두루미가 찾아왔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출판단지가 생기고 자유로가 개통되면서 아쉽게도 재두루미들이 일본의 ‘이즈미’라는 곳으로 떠났습니다. 지금 가고시마 이즈미 현은 겨울마다 전 세계에서 재두루미를 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곳이 되었어요.” 생태관광은 생태계 보전과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지속 가능한 관광으로 90년대 이후 매년 20~34%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고, 세계 5대 연안 습지 중 하나인 순천만에는 천연기념물인 흑두루미의 서식이 1000억 원의 경제효과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출처: 환경부/문화관광부 2008 생태관광 활성화 방안)
원래 산남습지는 재두루미의 월동지. 지금은 일본 이즈미로 떠나
다음으로 찾은 곳은 공릉천 갈대숲. 지역 주민에게는 ‘황토뚝방길’로 알려진 이곳은 교하 신도시에서도 30분이면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곳이다. 평소에는 갯벌에 노랑부리저어새가 부리를 저어가며 먹이를 찾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곳이지만 이날은 아쉽게도 새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습지나 하천에서 새들을 보려면 아침 7시 정도 이른 시간이 가장 좋습니다. 10시 쯤 되면 몸을 덥힌 철새들이 채식을 위해 이동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채식하고 있는 기러기들을 보거든 발걸음소리도 조심해주세요. 새들이 한 번 날아오르면 온종일 쪼아먹은 낱알들을 다 써버리는 겁니다.” 낱알 주위에 새가 모이듯이 노영대 해설사 주위로 참가자들이 모여들고 마정리 토박이 출신인 노영대 원장의 입담은 끊이지 않는다.
점심을 먹고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장산리. 장산 전망대에서 도우미들이 설치한 망원경을 통해 먹이를 먹는 재두루미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두루미는 평생 부부가 한 짝을 이뤄서 살아갑니다. 저기 있는 세 마리도 가족입니다. 두루미는 길상의 새이지요. 오늘 멀리서나마 두루미를 실컷 보시고 복 많이 받아가세요.” 노영대 해설사의 덕담을 들으며 망원경에 눈을 가져대자 천연기념물인 두루미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두 마리가 머리를 구부리고 낱알을 먹을 때 한 마리는 꼭 머리를 들고 주위를 살피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재두루미는 눈이 빨간데 몸통이 회색이라서 재두루미라고 불린다. 장산 전망대에서는 멀리에 북에서 설치한 인공기가 보이는 곳이다. 원래 계획된 일정대로라면 민통선 너머의 장단반도로 건너가서 독수리의 최대 월동지인 파주의 참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겠지만, 전날 보도된 ‘북한의 수소탄 실험 뉴스’의 여파로 독수리를 만나지 못했다. 대신 참가자들은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노영대 해설위원이 몇 해 전 몽골로 가서 독수리의 번식지를 찾아본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감상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택시를 타면 택시비를 내듯, 철새들은 떨어진 낱알을 먹고 똥을 싸고 갑니다”
▲탐조 행사에 동행한 어린이 참가자가 망원경을 통해 재두리미를 관찰하고 있는 모습
장산리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철새 먹이 주기 행사였다. “요즘은 농사기술이 발전해서 낱알이 논에 떨어지지를 않아요. 그 낱알을 먹으며 새들이 겨울을 나는데 먹질 못하면 장거리 비행중에 탈진하는 경우도 생기니까 탐조행사때는 꼭 철새먹이주기도 합니다.” 윤도영 대표의 말이 끝나자 노영대 해설위원의 설명이 이어진다. “철새들은 그냥 가지 않습니다. 택시를 타면 택시비를 내죠? 철새들은 낱알을 먹고 똥을 싸고 갑니다. 그 똥이 다시 우리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주는 거예요.” 자연의 순환. 파주의 땅이 철새를 품어주고 철새는 땅에게 보답한다. 평화. 차갑게 얼어붙은 남과북, 그 경계인 파주에 서서 철새를 보았다. 이 행사의 이름을 생태관광에 더해 ‘평화의 관광’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참가자들이 탐조 행사의 마무리로 철새 먹이 주기를 하고 있다. 사진 앞쪽은 윤도영 '파주미래DMZ' 대표
글.사진 정용준 기자
#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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