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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오해 ⑫ 편견과 오만

입력 : 2015-04-08 11: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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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견과 오만

 

"철수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한글을 잘 몰라 힘들어했습니다. 철수 엄마가 중국인인 다문화가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철수는 학교에 잘 적응하여 초등학교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금년 봄이면 중학교에 진학합니다. 철수는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새로운 친구를 만날 기대에 부풀어 있지만 또 다른 걱정도 있습니다. 집안 형편으로는 교복을 사서 입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복 물려주기는 수많은 철수와 같은 아이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위의 인용문은 공영 라디오 방송국에서 교복 물려주기 운동을 시작하면서 방송한 공익광고문이다. 이 광고는 다음과 같은 추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첫째, 엄마가 결혼 이민자인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은 한글을 잘 몰라(모를 수밖에 없어) 학교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둘째, 결혼 이민자는 대부분 중국출신이다. 셋째, 다문화 가정은 경제적으로 어려워 교복을 마련하는데 곤란을 겪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추론을 증명해줄 어떤 실증적 통계를 본적이 없다. 우리는 단지 단편적인 사례와 그것으로부터 비롯된 감성적인 ‘믿음"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심각한 편견이다. 다문화를 인정하고 수용하자면서 편견을 바탕으로 ‘어려운 다문화가정에게 교복 물려주기" 운동을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다문화가정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인종적 오만으로 치달을 수 있다.

 

‘러브 인 아시아"란 엄마가 결혼 이민자인 다문화 가정을 소개하는데 시청률이 꽤나 높은 TV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의 취지는 다문화를 수용하자는 것인데도, 처가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눈꼽만큼 비쳐줄 뿐이다. 방송은 가난한 처갓집 나라를 찾아가서 선행-집 고치고 가전제품 사다주는- 을 베풀고 오는 한국인 사위의 얘기다. 한국인 사위는 가난한 나라의 여자를 구제하는 ‘백마를 탄 왕자님"인 듯한 느낌이 든다.

 

‘다른 것"과 ‘열등한 것"을 같은 것으로 보는 편견에서 벗어나자.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구제해 주는 것"이란 오만을 버리자. 그런 편견과 오만을 퍼뜨리는 무식한 언론을 받아들이지 말자.

 

 

 

 

박종일(지혜의 숲 권독사)

 

#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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