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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오해 ⑭ 잊혀진 사람, 김훈

입력 : 2015-05-07 11: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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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사람, 김훈

 

모택동의 군대(홍군)가 압도적인 장개석 군대의 포위 추격 작전에 쫓겨 2년 동안(1934년 10월~1936년 10월)도망 다니다 마침내 포위망을 뚫고 새로운 근거지 연안에 정착한 사건이 장정이다. 장정은 중화인민공화국의 통치이념과 조직이 갖추어지고 신생 국가 조직을 이끌게 될 인재들이 훈련된 과정이었으니 비유하자면 현대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신화라고 할 수 있다. 장정에는 ‘조선" 출신 청년들이 상당수 참가했다고 한다. 이들 가운데서 상당한 공적이 있으나 우리에게는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한 사람을 소개하고자 한다.

 

김훈(1898년-1936년, 장정 당시에는 필사제란 이름을 씀). 평안북도 출신으로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일본 경찰의 체포령이 내려지자 중국 길림성 주하(珠河, 현재는 흑룡강성 상지尙志시)로 망명했다. 1921년 운남 강무당-청산리 전투에 참가했고 남한 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이범석(李範奭)과 북한 정부의 초대 민족보위상 최용건(崔庸建)도 이 학교 출신이다-에 입학하여 1924년에 전교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 후 국민혁명군 제4군 독립여단 제3대대장에 임명되어 정사교(汀泗橋)전투와 하승교(賀勝橋)전투에 참가했다. 1927년 남창봉기에 참가했으나 봉기가 실패한 후 중국공산당의 지시에 따라 소련으로 가서 공부했다. 1930년 귀국한 후 동북지역에서 무장투쟁을 지휘하다가, 1932년 중앙소비에트구역으로 소환되어 홍1군단 참모장을 맡았다. 1934년 군사위원회 간부연대에 배속되어 장정을 시작했고 이듬해에는 간부연대 전위 중대를 이끌고 180여 리를 강행군하여 교평 나루를 탈취했다. 이 덕분에 홍군 주력은 금사강을 안전하게 건널 수 있었다. 금사강 도하는 홍군이 국민당 군대의 추격과 포위를 벗어나는데 결정적인 전투였다. 이 금사강 전투후 홍군과 합류하여 홍15군단 제75사단 참모장이 되었으나, 1936년 황하 도강작전에서 중상을 입고 2월 22일에 운명했다. 이 장정에 참가했던 조선인은 최소한 30명이라고 한다. 김훈과 비슷한 공적을 세우고 같은 계급에 있었던 사람들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상장(한국 군대의 대장과 중상 사이의 계급)을 받았다.

 

그러나, 조선독립을 위해 홍군에 참여했던 장정 참여 조선인들은 중국의 역사에서도, 조선의 역사에서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일군 역사에서 배우는 것은 잊혀진 이들을 되살리는 데서부터일 것이다.

 

 
 

 

박종일(지혜의 숲 권독사)

 

 

#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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