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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오해 ㊿ 우리 곁의 조선족(2)

입력 : 2016-10-18 15: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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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의 조선족(2)

 

1980년대 초에 시행된 중국의 인구조사에서 박씨 성을 가진 조선족들이 약 370여 년 전부터 하북성 청룡(靑龍)현(孟家窩鋪村맹가와보촌), 요녕성 개(盖)현(朴家溝村박가구촌)과 본계(本溪)현(朴家堡박가보)에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명과 청이 교체하든 시기에 청은 두 차례의 호란(胡亂, 1627년과 1636년)을 일으켜 조선을 제압하였다. 이때 대량의 조선 군사가 포로로 잡혀왔다가 팔기군(八旗軍)에 편입되었다. [만주팔기씨족통보(通譜)]에는 박씨를 포함하여 팔기 내의 조선인 성씨 43개가 열거되어 있다. 위에서 언급한 박씨촌은 명말 청초의 전란에서 포로가 된 사람들의 후손임이 분명하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하북성 청룡현의 박씨네 선조들은 팔기군에 편입되어 관내(關內)로 들어갔다가 청 순치(順治) 연간에 궁정 정변에 연루되어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집단 유배되어 정착했다고 한다. 요녕성 개현과 본계현의 박씨의 선조들은 만주 왕공귀족들의 농장에 농노로 배치된 사람들이었다.

 

박씨의 족보에 의하면 이들은 지금까지 중국에서 이미 15~16세대를 살아왔다. 한 세대의 연령 차이를 대략 25년 정도로 본다면 제1세대가 중국에 정착한 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370년 전인 명과 청의 교체기가 된다. 사회적 역사적 원인으로 말미암아 박씨촌 사람들은 차별과 압박을 받지 않기 위해 수백 년 동안 자신의 족적(族籍)을 만주족 또는 한족으로 숨겨왔다. 이들은 비록 오래 동안 자신의 언어와 문자 및 풍속습관을 잃고 족적을 숨긴 채 살아오면서도 족보에서만은 조선인의 후예임을 기록해왔다.

 

중국은 헌법에서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을 금하고 각 민족의 평등을 보장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문화대혁명 때 까지 소수민족은 적지 않은 차별을 받아왔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와 중국공산당은 평등 불차별의 민족정책을 확고히 천명하였고 이 방침 아래서 1982년에 제3차 전국인구조사가 실시되었다. 이때 위에서 소개한 박씨들은 자신의 족적을 조선족으로 변경하여 줄 것을 청원하였고 이들의 청원은 수용되었다(중국에서는 호적에 출신 종족을 명시하도록 되어있음).

 


글 박종일(지혜의 숲 권독사)

#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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