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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오해 [71] 안순복(安順福). 이봉선(李鳳善)

입력 : 2017-10-10 15: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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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순복(安順福). 이봉선(李鳳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0주년(2009)을 맞아 중국 공산당 선전부, 중국공산당 조직부, 중국공산당 중앙문헌연구실, 중국 공산당 중앙당사연구실, 전국총공회(노동조합), 공산청년단 중앙위원회, 인민해방군 총정치부 등 도합 11개 기관이 연합하여 특히 청소년에게 애국주의를 고취하기 위해 신중국성립을 위해 뛰어난 공헌을 한 100명의 영웅모범인물을 선정하고 그들의 얘기를 같은 제목의 책(100位爲新中國成立作出突出貢獻的英雄模範人物)으로 펴냈다. 이 책은 1921년 중국공산당 창건 이후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기까지 중국 공산당의 혁명사업에서 중요하고도 감동적인 공헌과 희생을 한 애국자들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것이 강물에 뛰어들어 순국한 여덟 여인’(八女投江)의 얘기이다.

1938년 여름, 일본 관동군은 송화강 하류에서 삼강(三江)대토벌작전을 벌였고 동북항일연합군제 4,5군은 포위망을 뚫고 서쪽으로 후퇴하려 했다. 10, 항일연군 제5군 제1사단 휘하 한 부대의 부녀단 전투원 8명은 추격해오는 일본군을 유인하여 본대가 퇴로를 찾아낼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맡았다. 여름부터 시작된 오랜 전투와 북국의 추운 날씨에 시달리면서도 훌륭히 싸워왔던 8명의 여성 전투원은 탄약이 떨어지자 투항을 거부하고 추격해오는 일본군 면전에서 다 함께 손을 잡고 강물로 뛰어들어 순국한다. 8명 가운데서 최연장자는 23, 최연소자는 13살이었다. 그들 가운데 안순복과 이봉선이란 두 명의 조선인 여성이 있었다. 이들의 영웅적 행적은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고 1988년에는 팔녀투강기념탑이 흑룡강성 목단강시 강변공원에 세워졌다.






안순복은 1915년 흑룡강성 목능(穆棱)시 조선족 마을 신안둔(新安屯)에서 가난한 농민의 딸로 태어났다. 13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항일운동에 나섰다. 1933, 배신자의 밀고로 신안툰의 항일독립운동가 7명이 참살 당했는데 그 가운데에 안순복의 아버지와 남동생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안순복은 고향을 떠나 동북항일연군에 입대하여 피복공장에서 군복을 만드는 일을 하였다. 이때 중국 공산당에도 가입했다. 1934, 안순복, 허현숙(許賢淑) 4명의 여성 전사는 행군과 전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자신들의 아이 9명을 농가에 맡겨 기르도록 떠나보냈다. 193811, 목단강의 지류인 오사혼(烏斯渾)강 하류에서 일본군에 맞서 전투 하던 중 탄약이 떨어지자 동료들과 함께 강에 투신하여 자결했다.

이봉선은 1918년에 흑룡강성 임구현(林口縣) 용조향(龍爪鄕)에서 태어났다. 성장과정에 관해서는 알려진 게 별로 없으나 193811월에 안순복과 함께 강물에 몸을 던지기까지 항일연군 안에서 늘 그녀와 같이 생활했다.

조국의 광복을 위해 총을 들었고 목숨까지 바친 이 조선여인들을 (중화인민공화국은 그들의 건국의 영웅모범인물로 받들고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독립운동과 분단의 역사를 생각하면 늘 가슴이 답답해지는 부분이 이것이다.

(동북항일연군: 모태는 중국 공산당의 동북인민혁명군, 1935년 코민테른의 결정에 따라 중국 동북지역에서 결성된 중국과 한국의 사회주의계열 군사력의 연합부대. 1,2군은 남만주, 4,5,7,8,10군은 동만주, 3,6,9,11군은 북만주에서 활동했다. 초기에는 많은 전과를 올렸으나 일본군의 강력한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1940년 이후로는 사실상 궤멸되었다. 김일성 부대도 이 연합부대의 일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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