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이해와 오해] 120 - 중국(민국시기)의 4대 미남

입력 : 2020-12-04 03:51:07
수정 : 0000-00-00 00:00:00

[이해와 오해] 120

그들의 6.25

저술가 박종일

 

한국전쟁에서 미국 귀환을 거부하고 중공으로 간 21명의 포로들. 나중에 한 명에 빼고 모두 귀국했다(사진출처 BEMIL사진자료실)

올해는 6.25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째이다. 휴전협정이 맺어진 그해(1953) 8월부터 12월 사이에 포로교환이 이루어졌다. 75,823명의 공산군 포로(북한군 70,183, 중공군 5,640)가 북한과 중국으로 돌아갔다. 유엔군 포로 12,773(남한군 7,862, 미군 3,597, 영국군 945, 터키군 229명 등)이 각기 자국으로 송환되었다.

그런데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송환을 거부한 포로가 다수 있었다. 중공군 포로 가운데서 최소 22,600명이 송환을 거부하고 대만행을 선택했다. 이들은 대부분 국공내전 시기에 공산당군대와 맞서 싸웠던 장개석 군대 출신의 병사들이었다. 유엔군 포로 가운데서 남한군 325명이 송환을 거부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미군포로 21명과 영국군 포로 1명이 본국으로의 송환을 거부하고 중국행을 택했다. 중국에 남은 미군과 영국군 포로는 기구한 삶을 살아간다. 어쨌든 귀향을 거부한 포로들은 주류사회에서 잊힌 채 사라졌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몇 사람의 인생행로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제임스 베네리스(Veneris, James): 헌신적인 공산주의자로서 제철소 노동자로 일했다. 대약진 운동도 경험했고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앞장서 벽보를 붙이러 다녔다. 세 번이나 결혼했고 자녀도 두었다. 1976년에 미국을 방문했으나 중국으로 돌아갔고 죽은 뒤(2004) 중국에 묻혔다.

클레런스 아담스 (Adams, Clarence): 흑인이었던 그는 인종차별이 송환거부의 이유라고 밝혔다. 포로수용소에서 정치교육을 받고 열정적인 공산주의자로 변신했다. 월남전 동안에는 미군을 상대로 하노이방송의 반전 선전요원으로서 활동했다. 중국여성과 결혼했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반외국인 분위기를 피해 미국으로 돌아왔다(1966). 의회 반미행동위원회에 소환되었으나 공개적인 심문을 받지는 않았다. 중국음식점을 차려 생계를 유지했다. 1999년에 사망했다. 2007년에 그의 딸이 아버지의 자서전을 출판했다.

알베르 벨롬(Belhomme, Albert Constant): 10대 때에 미국으로 이민한 벨기에인이었다. 중국에서 제지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10년을 살다가 벨기에로 돌아갔다.

존 뢰델 던(Dunn, John Roedel): 중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체코 여성과 결혼하였고 1955년 체코로 가 그곳에 정착하여 살다가 1996년에 사망했다.

아론 윌슨(Wilson, Aaron): 저학력과 3년간의 포로생활을 통한 사상교육 때문에 중국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1956년 미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여성과 결혼하여 살면서 평생 동안 집 마당에 6미터 높이의 깃대를 세우고 대형 성조기를 달아놓았다.

해롤드 웹(Webb, Harold): 중국에 체류하는 동안 폴란드 여성과 결혼하였고 1960년에 폴란드로 이주했다. 1988년 사면을 받아 미국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경험을 정리한 변절자란 제목의 자서전을 썼다. 그밖에 나머지 사람들은 대부분 1960년대에 미국으로 돌아와 은둔하며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유일하게 송환을 거부한 영국군 포로 앤드류 콘드론(Condron, Andrew)은 원래부터 진지한 마르크스주의자이자 모택동주의자였다. 그는 6.25 중에 유엔군이 세균전을 펼쳤다고 주장했다. 북경외국어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이때 만난 프랑스외교관의 사생아인 여성과 결혼했다. 그가 쓴 수기 생각하는 병사(1955)는 호평을 받았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영국으로 돌아왔다. 서적외판원으로 생계를 꾸려가다 알콜 중독 때문에 이혼하였고 1996년에 런던에서 사망했다.

송환을 거부한 남한군 포로 325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중의 한 사람은 1960년에 발표된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허구의 존재로나마 이름 [‘이명준’]을 남겼지만 제3국으로 향하는 배에서 뛰어내려 투신자살하고 말았다. 나머지는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또는 살아갔을까)? 공식적으로는 아직도 진행 중인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그들을 생각해본다.

 
#121호 


신문협동조합「파주에서」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