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오해 [111] 고대의 기술자들
수정 : 2020-03-04 07:17:02
이해와 오해 [111]
고대의 기술자들
박종일
우리나라의 건국신화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것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곰과 호랑이가 마늘과 쑥을 먹고 인간이 되기를 빌었다는 단군신화이다. 이 신화의 바탕위에서 세워진 나라가 고조선이다. 고조선의 금속 유물은 모두 청동기이다. 고조선은 철기문화를 가진 중국의 고대 왕조 한(漢)에 의해 멸망하였고 그 후 새로운 철기문화를 가진 종족이 고조선을 이어 고구려를 세웠다.
신라의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세 인물(박혁거세, 석탈해, 김알지) 가운데 석탈해와 관련된 얘기는 한반도에 도입된 철기문화가 경상도에까지 파급되었던 시기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가락국 남해왕 때에 먼 바다로부터 배 한 척이 흘러들어왔다. 왕이 신하들과 함께 배를 맞이하려 했으나 배는 쏜살같이 사라졌다. 이 배는 다시 계림 동쪽 아진포라는 곳에 나타났다. 한 노파가 원래는 없었던 바다 가운데 한 작은 섬을 까치 떼가 뒤덮고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접근해보니 궤짝 하나를 싫은 배였다. 궤짝 안에는 단정한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배에는 갖가지 보물과 노비도 함께 실려 있었다. 사내아이는 자신의 내력을(용성국 함달파왕이 적녀국 왕녀와 결혼하여 낳은 알이라서 버림받았다) 설명한 뒤 노복을 이끌고 경주로 향한다. 그는 자신이 살고 싶은 땅을 발견하고 꾀를 부려 (호공의 집에 숫돌과 숯을 몰래 묻어놓고는 자기 조상의 집이었던 증거라며) 그 땅을 빼앗는다. 후에 석탈해는 신라의 왕이 된다. 이것은 탈해로 대표되는 철기제조 기술을 가진 이주세력이 호공(瓠公)으로 대표되는 토착세력의 군사요충지를 빼앗고 나라를 세웠던 사실의 설화적 표현이다.
▲ 신라 4대왕 석탈해는 인도인
신라의 뛰어난 유학자였던 강수(强首)는 기술자들이 사는 마을을 지나다가 대장장이의 딸을 보고는 한 눈에 반했다. 강수는 결혼하려고 마음먹고 아버지에게 말씀드리자 아버지는 미천한 자의 딸을 짝으로 맞는다면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만류한다.
위에 예시한 얘기는 모두 『삼국유사』에 기록된 얘기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간단한 사실만으로 볼 때 고대에는 제철기술을 가진 집단이 청동기술을 가진 집단의 나라를 빼앗는 정복자집단이었다. 후대에 와서도 제철기술을 가진 집단은 그 기술로서 토착집단을 제어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 그런데 더 후대에 가면 제철기술자 집단은 천박한 신분으로 전락하여 상층계급과의 혼인도 막혔다.
고대 왕국의 지배자였던 제철기술자는 시대가 흐르면서 제왕의 지위로부터 전문적인 수공업자로 전락하였다. 고대의 최첨단 기술이 중세 이후로는 누구나 아는 일반적인 기술로 변한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우위를 차지한 기술은 무엇이며 다음 시대에는 어떤 기술이 우위를 차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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