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오해 [100] 서점 이야기
수정 : 2019-05-10 10:32:10
이해와 오해 [100호]
서점 이야기
박종일
어떤 사람은 인류역사의 단계를 서점이 등장하기 전의 야만시대와 서점이 등장한 이후의 문명시대로 나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서점은 인류가 성취한 가장 정교한 아름다운 문명적 성과물임을 강조하는 주장이다.
죽간
중국역사에서 서점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시기는 2천여 년 전 한(漢)나라 때이다. 한 무제(武帝)가 수도인 장안(長安)에 국립대학인 태학(太學)을 설치한 뒤로 이 학교는 계속 확대되어 갔다. 전성기에 태학의 학생 수는 수 천 명에 이르렀으니 현대의 기준으로 봐도 작지 않은 규모이다. 독서인이 많아지자 그들이 이용하는 시장이 생성되었다. 장안 성 동남쪽에 홰나무(槐괴) 숲이 있었는데 그곳에 중국 최초의 도서교역시장이 생겼다. 동한 말년의 기록인 《삼보황도(三輔黃圖)》란 책에 다음과 같이 기록 나온다. “태학생들이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이 시장에 모여 각기 자기 고향의 특산물과 경전서기(經傳書記, 책)와 악기를 가져와 서로 사고판다.” 당시 사람들이 이곳을 괴시(槐市)라 불렀다.
괴시는 단순히 헌 교재를 교역하는 장소만은 아니었다. 그곳은 지식 엘리트들이 사교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교류의 중심지였다. 당시는 채륜(蔡倫)이 태어나기 전이라 종이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비단이나 면포 위에 기록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그 값이 너무 비싸 극히 일부 귀족들만 사용하였고 대부분의 책은 대나무를 쪼갠 죽간(竹簡) 위에 붓으로 글을 썼다. 그래서 괴시가 열리는 날이면 시장에는 홰나무 꽃냄새와 대나무 냄새가 가득했다. 서한 말에 왕망(王莽)의 난이 일어나자 괴시도 사그라졌다. 그러나 이때 생겨난 서점은 점차로 나름의 형태를 갖추어 나갔는데 “서사(書肆)”라 불렀다.
북경의 서점 유리창(사진 출처 세종타임즈)
당시 서사에서 팔던 책은 모두가 비단천이나 죽간 위에 손으로 쓴 필사본이었다. 채륜이 제지법을 발명하여 재료값이 획기적으로 낮아진 뒤에야 책값도 따라서 내려갔다. 이 시기에 어려서부터 글씨 쓰기를 훈련받아 어른이 된 뒤에 책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전문직업이 생겨났는데 이 일을 하는 사람을 “용서(俑書)”라고 하였다. 책의 수요는 급속도로 늘어났다.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 시대가 되자 “용서”는 경생“(經生)”이란 번듯한 호칭으로 불렸다. 이들이 만든 책이 서점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육조(六朝)시대에 낙양(洛陽), 장안, 성도(成都), 강릉(江陵) 등 대도시에는 서점이 널리 퍼졌다. 인기있는 책을 경생들이 쉴 새 없이 필사하다보니 낙양의 종이 값이 올라간다는 고사가 이때 생겨났다. 요즘 말로 하자면 “베스트셀러”가 등장한 것이다. 당(唐) 왕조에 들어서자 서점은 그 규모도 비약적으로 확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서점에서 서화와 같은 예술품도 취급하는 등 활동영역도 크게 넓어졌다. 이 시대 경생의 뛰어난 기술과 업적을 보여주는 것이 돈황(燉煌)에서 발견된 필사본 경전들이다.
당나라 말기에 가서 지방 군벌들의 반란으로 왕조의 힘은 크게 쇠약해졌으나 책을 만드는 기술은 오히려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판각인쇄 기술이 등장하였고 서점에서는 대량의 인쇄본 책들을 팔기 시작했다. 책의 종류도 또한 빠르게 늘어났다. 서점에서 달력, 불경, 시집, 의학서, 점술서, 농경서가 팔렸다. 장안과 성도는 판각인쇄산업의 중심지였다. 서점에 고상한 이름을 붙이는 풍습이 이때 생겨났다. “부문당(富文堂)”, “양정재(養正齋)”, “홍운루(鴻運樓)”, “숭문각(崇文閣)”......
중국이 자랑하는 국보이자 중국인들로부터 널리 사랑받는 그림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는 서기 1100년 무렵에 그려졌는데 당시 송(宋) 나라 수도 변경(卞京)의 번화한 시장거리를 묘사하고 있다. 그림 속에는 온갖 종류의 상행위, 온갖 형태의 상점, 온갖 방식의 광고기법이 등장하고 있는데 그 속에서 서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서점이 저자거리의 가장 번화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때쯤이면 서점에서 파는 책은 필사본은 거의 사라지고 대량 생산되는 판각인쇄본이 주류의 자리를 차지했다. 명(明)나라에 들어와서는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교재가 스테디셀러 반열에 오른다. 그리고 서민들 사이에서도 문자해독률이 높아지면서 “금병매” 같은 대중적 인기소설도 팔렸다. 청나라 때는 전문서점거리가 형성된다. 요즘 우리가 북경에 여행가면 들리게 되는 “유리창(琉璃廠)”이 그런 곳이다.
중국문화의 강한 영향을 받아왔던 우리에게도 아마 오래전부터 서점이 있었을 법 한데 역사기록에는 서점에 관한 얘기가 별로 없다. 조선조 중후기에 등장한 서점에 관한 얘기는 소략하게 남아있기는 하다.
온라인 서점의 등장으로 쇠퇴했던 서점들이 새로운 형태로 부활하고 있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띤다. 새로운 서점들은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서점에 가면 음악도 있고, 강연도 있고, 전시도 있고, 책을 읽으며 담소하고 쉴 수도 있고....2천 년 전 괴시의 모습이 되살아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1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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