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오해 ㉖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방법
수정 : 0000-00-00 00:00:00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방법
돈황(敦煌)은 고대 실크로드의 요충지였고 널리 알려진 막고굴(莫高窟)은 돈황현 동남쪽 25킬로미터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막고굴은 절벽 면에 뚫은 490개의 동굴로 이루어진 불교사원이다. 그런 동굴 가운데 하나가 장경동(藏經洞)이다. 장경동의 입구는 대략 9~10세기경에 봉쇄되었다가 20세기 초에 왕원록(王圓菉)이란 떠돌이 도교 도사가 발견했다.
학식이 얕은 왕원록의 꿈은 언젠가 그곳에 도교 사원을 짓는 것이었다. 1900년 6월 22일, 왕 도사는 일꾼을 고용하여 버려진 불교 석굴사원을 정리하다가 당나라 시대의 불경 수만 권과 옛날 물건으로 가득 찬 장경동을 발견했다.
돈황을 찾아온 첫 번째 외국인은 영국인 탐험가 오렐 스타인이었다. 그는 인도 총독부의 지원을 받아 1907년 초에 돈황에 도착했다. 그는 왕 도사에게 약간의 시주를 하고 온갖 속임수를 부려 도합 9천 점의 두루마리 경전과 5백 장의 그림을 손에 넣었다. 1914년에 다시 막고굴을 찾은 그는 첫 번째와 같은 방법으로 6백여 권의 불경을 건네받았다.
1908년 2월, 두 번째로 돈황을 찾아온 서양인인 프랑스의 폴 펠리오는 중국학을 전공한 젊은 학자였고 왕도사가 그를 맞았다. 펠리오는 스타인과 꼭 같은 방식으로 왕도사로부터 6천여 점의 불경과 고문헌을 손에 넣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혜초(慧超)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 이때 펠리오의 손에 들어가 지금까지 파리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세 번째 인물은 일본의 승려 오타니 고즈이가 보낸 탐험가들이었다. 그들은 1902~1914년 사이에 중국 서북지역을 세 차례 탐사하면서 왕 도사로부터 중국어와 티베트어 필사본 경전 500여 점을 사들였다.
1914~1915년에 러시아인 불교 예술사가 세르게이 올덴부르크가 돈황을 찾아왔다. 그는 왕도사로부터 약 200개의 두루마리 경전을 사갔다.
하버드대학 포그박물관의 큐레이터 랭던 워너가 1924년에 돈황에 도착했을 때 그를 영접한 인물도 역시 문제의 왕 도사였다. 이 무렵 왕 도사 수중에는 남아있는 두루마리가 없었다. 워너는 인사치레로 왕 도사에게 얼마간의 돈을 주었고 왕 도사는 워너가 벽화를 뜯어가는 것을 모른 척 해주었다. 반세기가 넘게 흐른 뒤에 워너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모델이 된다.
위대한 인물만이 아니라 왕 도사 같은 어리석은 인물도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길 수 있다.
박 종 일 ( 지혜의 숲 권독사 )
#26호
신문협동조합「파주에서」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