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책꽂이] 며느리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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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신문협동조합 ‘파주에서’ 신간책꽂이
며느리 사표, 영주, 사이행성
이번 명절에 시어머니의 ‘은퇴선언’이 있었습니다. 45년간 종손부 며느리로 살아오신 시어머니께서 이젠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아예 제사를 없애겠다고 선언하신 겁니다. 15년차 며느리인 저는 시어머니의 선언에 환호했지만, 집안 분위기는 어수선했습니다. 시아버님의 허락이 떨어져야 한다나요? 노동의 자기결정권이 노동의 주체에게 주어지지 않고 가부장이 쥐고 있는 현실이 답답해 한숨만 나왔습니다.
SNS에서 신간 <며느리 사표>의 홍보 게시물을 봤습니다. 한 여성이 양 손을 모아 공손히 ‘사표’를 내미는 사진과 구름 위에서 춤을 추 듯 가볍게 발걸음을 내딛는 여성의 삽화를 실은 책 표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한 시라도 빨리 읽고 싶어서 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며느리 사표>를 샀습니다. 지금 시어머니와 제가 하고 있는 고민의 해결책을 찾고 싶었습니다.
<며느리 사표>의 저자인 23년차 맏며느리 영주 씨는 명절을 이틀 앞둔 어느 날 시부모님께 오랫동안 준비해온 ‘며느리 사표’라고 쓴 봉투를 내밀고 새로운 삶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저자는 그동안의 삶이 아내, 며느리, 엄마라는 ‘역할’에 대한 의무였으며, 이제부터 그 의무를 내려놓고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찾겠노라고 선언하고 행동에 옮깁니다. 남편에게 서약서를 받아내고, 대학을 갓 졸업한 딸과 아들을 독립시키고, 자신은 꿈 작업을 통해 자아를 되찾습니다. 지금은 꿈 심리강사로 활동하며 ‘가족꿈심리작업소’를 운영합니다.
영주 씨는 맏며느리가 사라지니 시가의 풍경도 달라졌다고 말합니다. 명절에 집에서 차례를 지내는 대신 가고 싶은 사람만 성묘를 가는 것으로 바뀌었고, 집 밖에서 가족이 모여 며느리가 다른 가족 구성원의 시중을 들 일이 없어졌습니다. 가족 구성원 모두 스스로 자신을 돌보게 되자 수평의 관계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가족 관계가 오히려 더 풍요로워졌습니다.
이제 막 ‘은퇴선언’을 하신 시어머니와 3년 전에 ‘며느리 사표’를 제출하고서 아직도 가끔 악몽을 꾸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친정 엄마에게 <며느리 사표>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가족 내 여성의 삶이 달라지길 바랍니다.
김정은 <엄마의 글쓰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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