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살림 고양파주 생협] 나는 쌀-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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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의 대표 물품, 쌀
한살림을 대표하는 물품 하나를 고르라면 서슴없이 쌀을 선택하겠다. 따지고보면 한살림의 시작도 ‘쌀가게’였다. 1986년 한살림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서울 제기동의 스무평 남짓한 가게를 채우고 있었던 건 충북 음성 성미마을의 무농약 쌀과 돌을 골라내는 석발기였다. 한살림에서 쌀은 교환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물품 가운데 하나이다.
물품군별로 다르긴 하지만 한살림의 마진율은 대략 25% 내외다. 물품 가격이 100원일 때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금액이 75원이라는 얘기다. 남은 25원으로 살림을 산다. 인건비, 물류비, 매장 임대료, 연대활동비 등이 여기서 나온다. 빠듯한 살림이다. 그런데 쌀만은 유독 마진율을 달리한다. 겨우 8% 남짓. 유통비나 제반 비용을 생각하면 쌀에서 이문이 남는 경우는 없다고 봐야 한다.
오히려 팔수록 손해다. 쌀의 마진이 박한 까닭은 시중의 쌀 가격이 터무니없이 낮아서다. 이렇게 애를 써도 한살림 쌀은 시중 쌀보다 여전히 비싸다. 대형마트에서 백미는 100g(밥 한그릇이 나오는 양)당 300원 내외에서 구입할 수 있다. 한살림 쌀은 100g당 390원을 웃돈다. 두부나 유정란 등 다른 대표 물품과 비교할 때 한살림 조합원의 쌀 이용률이 뚝 떨어지는 것도 일견 이해할만 하다. 그런데 역으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쌀을 팔아 농부들이 손에 쥐는 값이 과연 적정한가에 대해서 말이다.
쌀은 부자들의 밥이었다. 누구나 쌀밥을 먹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건 산업화 이후였다. 그런데 산업화·도시화는 낮은 쌀 가격이 있어 가능했다. 도시 노동자들이 저임금의 가난을 감수할 수 있었던 건 쌀 가격이 낮아 굶지는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낮은’ 쌀 가격을 위해 품종(통일벼) 제한과 함께 수매가를 엄격히 통제하였다. 농부들의 고혈을 짠 것이다. 농부들은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등지고 저임금의 도시 노동자가 된다. 그러므로 한살림 매장에서 쌀 가격이 높다고 외면하는 것은 쌀에 담긴 사회사를 함께 외면하는 것이다.
파주 적성면에서 농사짓는 이원경 농부의 직거래 쌀 가격은 처음 농사를 시작한 14년 전 그대로다. 무려 14년이다. 백남기 농민의 안타까운 죽음도 따지고보면 쌀 때문이다. 쌀이 밥이 되고 밥은 다시 사람이 된다. 오늘도 나는 한살림쌀로 밥을 지어 먹는다. 나는 쌀-사람이다.
#51 창간2주년 특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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