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고딩의 같잖은 문화 리뷰 <26> "왜 우리는 피해자를 탓하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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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고딩의 같잖은 문화 리뷰<26>
“왜 우리는 피해자를 탓하게 됐을까?”
위안부 세 할머니 이야기
영화 <어폴로지> 리뷰
전쟁이 시작되면 불분명한 권력 관계도 확실해진다. 여성은 군인들을 위한 도구가 되는 일방적인 폭력 관계가 만들어졌고, 가난한 사람들은 먼저 동원되거나 동원을 피하지 못했다. 반면 힘 있는 사람들은 전쟁을 이용해 그 힘을 축적한다. 태평양전쟁 당시 군수사업에 참여했던 일본 대기업이나, 한국전쟁에 군수물자를 대며 재기의 기회를 얻은 일본이 그렇다. 전쟁을 통해 피해를 보는 사람과 이득을 보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을 바라보게 되니 과연 전쟁이 이념 차이에 따른 불가피한 일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전쟁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이미 커다란 영향력을 갖고 있다. 그 영향력에 의해 언제나 전쟁의 위험 속에서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분단국가, 미사일과 핵의 위협 속에서 전쟁을 부추기는 진짜 주체는 무엇일지 정확하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좀 더 통찰력이 필요할 것 같다.
밝게 웃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할머니들을 보며 생소한 감정이 들었다. 어디서 우리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해맑은 모습을 볼 수 있겠는가. 갑자기 책 속에서 납작하게 존재하던 할머니들이 눈앞에 나타나 인사를 건네는 것 같았다. 할머니들도 인간이다. 이렇기도 하고 저렇기도 한 입체적인 특징을 가진 인간. 당연한 일임에도 조금 충격적이었다. 나는 그동안 위안부 피해자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던 걸까. 위안부 피해자를 소녀 시절을 잃어버린 가녀린 존재로만 인식해서는 안 될 듯하다. 그들은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로서 강인하게, 이 시대의 노인으로서 지혜롭게, 누구보다 굳세게 삶을 살아가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
아델라 할머니는 가족들에게 위안부 피해 사실을 숨겨왔다. 남편에게는 평생 말하지 못하였고, 그것이 한이 되어 아들과 다른 가족들에게 사실을 밝히려 마음을 먹는다. 할머니는 아들에게 만나러 갈 테니 시간을 비우라는 통보 전화를 하고 숨을 몰아쉰다. 할머니가 잘못한 일이 아님에도, 할머니는 잘못을 털어놓기 직전의 아이들 같이 갈등을 겪는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모두 위안부 피해 사실을 너무나 '어렵게' 고백한다.
강간범죄에 우리는 유독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그러게 왜" "너가 그러지만 않았어도" 하는 말들은 피해자들을 점점 어둠 속으로 몰아넣는다. 피해자는 숨어 드러나지 않고, 가해자는 양지에서 더 많은 범죄를 저지른다. 어둠 속에는 피해자가 바글바글해졌다. 이건 단순히 가해자의 문제만은 아니다. 왜 우리는 피해자를 탓하게 됐을까?
이에는 여성에게 처녀성 혹은 순결을 강요하는 등의 가부장제와 유교문화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쉬쉬하고 없었던 일로 하는 것이 가장 편한 방법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생각은 어떤 환경에서 비롯되는지가 중요했다.
우리는 왜인지 강한 자의 편에 서는 것에 익숙해졌다. 강자에게 이입하고, 강자의 입장에서 그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러면 강자가 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좋은 쪽으로 돌아가는 사고회로가 작동하는 것일까?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나는 우리가 너무 강자의 이야기만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자 위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모든 이야기는 강자에 의해 생산된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강자의 이야기를 우리는 평생 들어왔다. 익숙해지고, 공감할 수 있다. 강자는 약자들의 공감에 더 힘을 얻고, 약자는 더욱 약해지며 이야기할 기회를 잃는 것이다.
권력은 모든 일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악순환을 막고 권력을 조금이라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우리는 그래서 페미니즘을 배우고, 학살사건을 공부하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직접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
<파주에서> Teen 청소년 기자
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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