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나눔이다. 도예가 박종식 “뜨거운 열정으로 도예계의 이중섭, 베토벤이 되다”
수정 : 2022-07-14 07:06:03
예술은 나눔이다.
도예가 박종식
“뜨거운 열정으로 도예계의 이중섭, 베토벤이 되다”
박종식(朴種植:76세) 도예가를 탄현면 대동리 메주꽃 식당 뒤편에 문을 연 김대년 갤러리에서 만났다. 7월 14일까지 그의 개인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박종식 도예가를 김시하 관장과 매니저 윤상규 작가와 함께 자리를 잡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47년 서울출생, 66년 홍대 공예과(도자기 전공)를 졸업했다. 도자기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드물 때였다. 당시 미술실력의 기준표였던 대한민국미술전람회서 입선 7회 특선 2회를 거머쥐었다. 그는 그 때부터 도예가들이 물레를 돌려 둥그런 도자기를 만드는 게 영 마뜩치 않았다. 결국 만들고 나면 생활자기요, 표현물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도자는 표현 매체, 작가의 생각과 사상을 담아야
그에게 도자작품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매체일 뿐이다. 그는 도자제작과 더불어 서양화도 그렸다. 회화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체득했고 도자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매체라는 당시의 믿음을 지금도 견지하고 있다. 80년 도자기벽화연구원 자격으로 미국에서 연수를 받은 이후 그의 작품들이 본격적으로 세간의 이목을 사로 잡았다. ‘단순 자기’가 아닌 ‘표현 자기’로 말이다.
82년에는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초대작가로 출품했고, 83년엔 프랑스 비엔날레 국제 도자기전서 입선까지 했다. 그는 만학의 나이로 홍대공예과를 졸업한지 22년만에 국민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할 정도로 배움에 대한 열정도 넘쳤다.
건강문제로 오랫동안 침잠하다 2019년 신작전으로 화려하게 부활
그러나 2005년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서 열린 7회 개인전을 이후 건강이 안 좋아져 무려 15년동안 침잠했다. 제자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건강을 회복한 그는 2019년 신작전(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의 작품은 늘 어떤 생각과 사상을 담고 있다.
한때 중남미의 마야사상에 심취해 제작한 MyYa 시리즈(고요한 세월은 흔적으로 남고), 기독교 핍박마을이었던 프랑스 Clos 마을 주민들의 인용과 고난정신을 십자가로 표현한 Clos to Cross, 자신의 겪었던 심적 육체적 고통을 승화시킨 Heart 시리즈, 인간의 본성과 가면과의 갈등을 그린 Mask 시리즈 등이 그의 대표적 작품들이다. 그는 일부 잘 나간다는 도예가들이 디자인만 하고 나머지 작업들 예를 들면 유약 섞는 것, 흙 빚는 제토 작업, 가닥 뜨는 것, 도자기에 불넣는 소성 등의 작업을 다른 사람이나 제자에게 시키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모든 작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가 해야한다”
그가 믿는 작업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 자신이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진정한 예술가이고, 그의 작품은 진정성을 획득한다. 이번 김대년 갤러리에 선보인 작품들은 부제가 ‘흙과 불 이야기-동심으로 돌아가다’이다. 도자기들에 동심들의 모습이 구상적으로, 추상적으로 잘 구현되어있다. 김시하 관장은 “오랜 시간속에 정제된 작품들이 다시 편안한 상태로 돌아온 느낌이다. 많은 미술인들이 그를 도예계의 이중섭이라고 인정한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도 거침없는 시도와 자유로운 선을 결합시킨 멋진 작품들이라 자신 있게 권한다”고 덧붙였다. 박종식 도예가는 귀가 잘 안 들린다. 월남전 당시 포병부대 박격포 사수여서 큰 대포소리를 너무 많이 들었던 탓이다. 그래서 그의 매니져인 윤상규씨가 인터뷰에 해설을 곁들여 주어 시원한 비 소리와 함께 인터뷰는 부드럽게 진행됐다.
베토벤의 풍모와 인생 닮은 박종식 도예가
박종식 도예가가 모자를 벗으니 백발이 성성하고 얼굴 피부가 매끄럽고 투명해 보인다. 오랫동안 작업을 쉬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이야기가 오갔고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그의 작품을 후려치려는 모리배의 횡포도 화제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귀가 어두워서 그런 건지, 오랜 세월 치열하게 살아왔던 그에게 나오는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는지... 그에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큰 소리로 물었다.
▲현재 전시하고 있는 작품들
어디 시원한데 가서 바람이나 쏘이고 싶다.
“어디 시원한데 가서 바람이나 쏘이고 왔으면 좋겠다. 여행 가고 싶다”고 말했다. 작업 외에 앞으로의 특별한 계획 같은 것은 없다고 하신다. 그는 작업실에 한번 놀러오란 말을 던지고 일어섰다. 그리고 우산을 쓰고 아직도 폭우가 쏟아지는 빗 속안으로 성큼 걸어 들어갔다.
뒷 모습을 보니 만년에 귀가 거의 안들렸어도 그 고통속에서 불후의 명작을 창조했던 베토벤이 떠올랐다.
김석종 기자
김대년갤러리
#1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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