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재단 논평] 외눈 외교로는 글로벌 중추국가로 설 자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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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재단 논평] 외눈 외교로는 글로벌 중추국가로 설 자리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다자외교 무대 데뷔
윤석열 대통령이 스페인에서 열린 NATO 정상회담에 참석하고 7월1일 귀국했다. 윤 대통령은 회담 기간 동안, 계획되었던 9건의 양자회담 중 ‘일정이 안 맞아’ 취소된 핀란드 니니스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제외하고 8건의 양자회담을 소화했고, 나토 동맹국-파트너국 정상회담, 스페인 국왕 면담, 한·미·일 3개국 정상회담, 스페인 경제인 오찬 간담회 등에 참석했다. 주목되었던 한·일 정상회담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우리 측이 적극적으로 추진했지만, 일본 측이 난색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회담 성과에 대해서는 앞으로 서서히 평가가 나오겠지만, 애초에 NATO라는 유럽 집단안보의 장에 한국이 꼭 참가했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소모전의 양상으로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지금 국제사회가 해야 할 일은 즉시 정전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우크라이나 정세와 G7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4개월이 지나는 6월 24일 시점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 측에서 각각 만 여명의 병사들이 전사했다는 추산이 있다. 전쟁은 무고한 시민들에게도 심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어서 우크라이나에서는 4,600 여명의 시민이 희생되었다는 추산이 나오고 있다. 동부에서 우크라이나의 저항이 완강하기는 하지만, 전세는 러시아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어, 우크라이나 대통령부에 따르면 6월 들어 하루 약 100명꼴로 전사자가 나오고 있다. 급기야 24일 하이다이 루간스크 주지사는 우크라이나군이 세베로도네츠크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인정했다.
그런 가운데 독일에서 열린 G7 정상회담은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서방의 단결을 과시했다. G7 정상들은 공동성명을 발표하여 295억(약38조원) 달러를 지원하고, 그밖에 무기한의 재정적, 인도주의적, 군사적, 외교적 지원을 약속했다. 또한 대러 제재를 강화하여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가격 상한제와 러시아 금의 수입 금지 등에 합의하는 등 푸틴 대통령의 전쟁 자금줄 차단을 위해 행동을 통일했으며,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항해서 2027년까지 6,000억 달러(약777조원) 규모의 개도국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이러한 내용은 서방의 단결을 과시한 모양새지만 내역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유럽 각국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을 둘러싸고 피로 현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피로 현상
미국과 유럽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 강화로 물가가 오르는 등 시민생활에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존슨 영국 총리는 “‘우크라이나 피로’가 나오기 시작하는 지금이야말로,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대해 더욱 확실히 지원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고, 스톨텐베르그 NATO 사무총장은 러시아의 침공이 앞으로도 수년 계속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물가상승과 비용 부담에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계속적인 지원을 호소했다.
이러한 발언들은 역설적으로 유럽 시민들 사이에서 ‘지원 피로’ 현상이 널리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럽외교평의회’가 최근 실시한 유럽 10개국 여론조사에서 ‘각국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지나치게 관여하고 있으며, 국민이 직면하는 문제에 충분히 대응하지 않고 있다’는 응답이 42%로, ‘적절하다’는 의견(36%)을 앞섰다.
기록적인 물가고는 각국 정상들에게 큰 정치적 부담이 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은, ‘리얼 클리어 폴리틱스’의 24일 시점 조사에 따르면, 39%에 불과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일시적으로 43% 가까이 올랐지만, 6월 이후 40%를 밑돌고 있다. 독일에서는 숄츠 총리의 사회민주당이 5월 주의회 선거에서 패배했으며, 프랑스에서는 6월 19일에 실시된 국민의회(하원) 결선투표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여당연립이 과반수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일본에서도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은 6월 말 들어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의 조사에 따르면 41%를 기록해서 지난 5월 조사보다12%p가 하락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여 NATO 정상회담이 열리는 마드리드에서는 반-NATO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시위대는 “푸틴도 NATO도 반대”한다며, “무기 대신 기후 대응”을 요구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악영향들이 반-NATO, 반전 운동으로 표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G7 정상회담이 열린 독일 바이에른주에서도 기후 대책 강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세계정세 두루 보기, 깊이 읽기
G7 내부도 단순하지 않다. 6월 16일에는 독일의 숄츠 총리,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 이탈리아의 드라기 총리가 나란히 키이우를 방문했다. 의외였던 것은 모두가 키이우를 방문하는 것이 처음이었다는 점이다. G7 정상회의를 앞두고 주최국인 독일 숄츠 총리를 포함해 주요국 정상들이 한 번도 키이우를 방문하지 않았다는 데 대해 의문이 일고 있었다. 세 정상은 키이우를 방문하여, 지원을 계속할 의지를 밝히고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을 지지했다.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을 적극 지지하는 이탈리아를 끼워 함께 가는 것으로 독일과 프랑스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소극적이라는 인상을 불식시키려 했다. 이러한 경위로 보아, 이번 G7 공동성명은 우크라이나전쟁의 전망과 대응에 대한 서방 국가들의 이견을 봉합한 데 의미가 있었다.
NATO가 확대되는 와중에 지구의 반대편 쪽에서는 ‘분홍 물결’이 확대되고 있었다. 남미 콜롬비아에서 6월 19일 치러진 대선에서 좌파연합의 페트로 후보가 당선되었다. 중남미에서는 오랜 사회주의 국가 쿠바에 더해,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등이 좌파 노선을 견지하고 있었고, 2018년 멕시코에서 좌파 정권이 탄생한 것을 계기로, 2019년에는 아르헨티나, 2020년에는 볼리비아, 그리고 작년에는 페루, 칠레, 온두라스 등에서 좌파 정권이 탄생했다. 여기에 콜롬비아가 추가되었고, 올 10월로 예정된 브라질 대선에서 좌파 정당인 노동자당 소속의 룰라 후보가 당선되면 중남미 전체가 ‘핑크빛’으로 물들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6월 9일 28년 만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미주 정상회담에는, 미국이 쿠바,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등 반미 국가 정상들을 초청 대상에서 제외한 데 대해 멕시코, 볼리비아, 온두라스 등이 반발하여 불참을 선언했다. 그 결과 미주 정상회담에는 35개 대상국 중에 23개국만이 참석, 미국의 구심력 저하가 두드러졌다. 바이든 대통령이 NATO에 매달리는 것은 이를 만회하려는 행동이기도 하다.
NATO 정상회담은 6월 29일 새로운 전략개념을 채택하고 폐막했다. 신전략개념은 2010년 전략개념에서 “전략적 파트너”로 표현되었던 러시아를 “가장 중요하고 직접적인 위협”으로 표현하여, 러시아를 사실상 적대국가로 간주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번 전략개념에서 중국을 처음 언급하여 ‘구조적 도전(systematic challenge)’이라 규정하고 NATO 차원의 대응을 공식화했다는 점이다. 다만 그 언급의 수위를 조절하는 데 독일과 프랑스가 일조했다는 대목에는 주의를 기울일 만하다.
NATO 강화가 드러낸 자기모순
핀란드와 스웨덴의 NATO 가입이 확정되었다는 사실도 특기할 일이다. 가맹에 반대했던 튀르키예를 설득하기 위해 두 나라가 튀르키예의 분리독립 세력인 쿠르디스탄노동자당(PKK)에 대한 지원을 철회한 것은 NATO의 ‘가치’가 그들만의 가치이며, 보편적 인권에 반하는 것임을 웅변적으로 보여주었다. 튀르키예의 쿠르드족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묵인하면서, 중국의 신장 위구르족 탄압을 비난하는 모순이 드러났다. 대표적인 권위주의 정권인 튀르키예 에르도안 정권이 최신형 무기로 무장하는 것을 용인하는 NATO가 권위주의 연대에 대응하여 민주주의 옹호를 위해 결속했다는 주장은 또한 과연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번 일로 미국과 NATO는 더욱 많은 중동 국가의 냉소적인 시선과 기회주의적 행동을 감수해야 하며, 중동 질서는 더욱 혼돈에 빠질 것이다.
이번 NATO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과 러시아는 선제적으로 행동하며, 더욱 긴밀해지고 있었다. 6월 23일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 등 5개국으로 구성되는 브릭스(BRICS) 정상회담이 열렸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냉전적 사고와 집단 대결을 지양하고 독자 제재와 제재 남용에 반대한다”고 하여 러시아에 조금 더 다가서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과 러시아가 스위프트 결제망에 대응하는 별도의 국제 결제 시스템을 제안하고, 아르헨티나와 이란을 새로 받아들여 세 규합을 시도하고 있지만, NATO와 마찬가지로 여기도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미묘한 균형이 보인다. 인도가 유보적인 입장을 보여 대러 제재 반대를 공동선언에 포함시키지는 못했던 것이다. 대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양자 회담을 지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브릭스에 이어 새로운 소다자 협력체로 부상하고 있는 비스타(VISTA)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남아공, 튀르키예, 아르헨티나로 구성되는데 이 가운데 튀르키예를 제외하고 모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중립을 견지하고 있는 국가들이다. 이 가운데 아세안을 구성하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특히 인도네시아가 우크라이나전쟁의 와중에 가장 눈부신 외교를 전개하는 나라로 주목받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중재 외교
인도네시아 조코위 대통령은 NATO 지도자들이 마드리드에 모여 있는 동안 잇따라 젤렌스키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을 만나 중재 외교를 전개했다. 지난 4월 조코위 대통령은 G20 의장국으로서 양 정상을 초청한 바 있다. 일부 서방국가들이 푸틴을 G20 참석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음에도 조코위는 이를 거부했다. 그것도 기시다 총리가 서방국가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날에 맞춰 푸틴 초청을 공식화하는 배포를 보였다. 조코위 대통령은 G7 정상회의에도 참석하여, 대러 제재가 식량과 비료 공급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행동을 취할 것을 촉구했다고도 밝혔다. 조코위 대통령은 G20 회의를 주재하는 의장국 정상으로서 주어진 공간을 활용하고 있지만, 이는 1955년 반둥회의 주최국으로서 비동맹주의의 전통을 새로 계승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향후 인도네시아의 행동은 미·중, 미·러 대립이 격화할수록 더욱 돋보일 가능성이 있다.
NATO 정상회의가 열리는 동안, 러시아는 대화의 문을 열었다. 전쟁 발발 이후 최대 규모인 144명의 포로를 우크라이나와 맞교환했다. 또한 흑해의 요충지 즈미니섬에서 철수하여, 흑해를 통한 곡물 수출이 재개되도록 조치를 취했다. 이 섬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첫날 장악한 흑해의 전략적 요충지로, 러시아의 투항 요구에 맞선 우크라이나 측 저항의 상징이었던 곳이다. 러시아군의 즈미니섬 철수는 우크라이나가 정전의 명분으로 활용할 만한 행동이었다. 이후 푸틴은 “전략적 안정을 보장하고,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를 지속하며, 군비 통제 상황 개선과 관련한 대화에 열려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제사회가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주목된다.
간과된 과제・숨겨진 변수, 기후변화
우크라이나전쟁도 문제지만 국제사회가 단합해서 대응해야 할, 진정 심각한 과제는 기후변화 문제다. 이것이야말로 인류의 미래가 달려 있는 문제다. 유럽 각지, 특히 프랑스와 스페인에서는 6월 중순에 이미 최고기온이 섭씨 40도를 넘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고, 특히 NATO 개최지 스페인에서는 폭염의 영향으로 대형 산불이 발생하고 있었다. 서울과 도쿄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은 사상 첫 ‘6월 열대야’가 발생했고, 도쿄에서도 6월 말 35도 이상의 폭염이 사흘 계속되어, 이틀 새 200여명이 열사병 증세로 입원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서울에서와 마찬가지로 도쿄에서도 관측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남반구의 호주는 지난 1월 여름 최고기온 50.7도를 기록했고, 여러 곳에서 심각한 홍수 피해가 발생했다. 지난 총선에서 호주 국민은 미국과 함께 대중 포위망에 나서는 데 열을 올리며 기후변화에 미적지근한 모리슨 정권 대신 앨버니즈 노동당 정권을 선택했다. 정권 발족 후 한 달이 지나면서 앨버니즈 정권은 기후변화 대책을 통해 중국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남태평양의 국가들과 관계를 강화하면서, 중국과도 2년 반 만에 각료급 회의를 재개하는 등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다. 앨버니즈 내각으로의 정권 교체로 쿼드(QUAD)와 오커스(AUKUS)는 위상변화에 직면하게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NATO 일정을 개시했던 것이 앨버니즈 호주 총리와의 양자회담이었다. 이번 NATO 참석에서 우리 정부가 의미를 찾을 것이 있다면, 복잡한 합종연횡으로 전개되는 국제정치 속에서 동맹 경사, 나아가 동맹 경화의 위험성을 확인하는 일일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우크라이나를 전선으로 NATO와 중국-러시아가 대립하면서 신냉전이 다가오는 것이 현실인 것 같지만, 속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미묘한 균형이 발견되고, NATO와 중국, 러시아로 환원되지 않는 그 밖의 요인이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이 확인된다.
신냉전 회피, 전쟁 중재 외교의 길
탈냉전 시기 민주화를 이룬 뒤 글로벌 중추국가로 거듭나기 위한 대한민국의 분투의 역사는 왜곡된 시각을 교정하여 세계정치의 균형점을 확인하고, 우리에게 숙명처럼 드리웠던 냉전을 극복하여 세계정치의 중심으로 나아가기 위한 몸부림의 역사였다. 그런 우리가 냉전을 스스로 다시 불러들이는 움직임에 가담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70년 전 우리는 길어지는 정전회담과 고착된 전선에서 고작 한 뼘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 무수한 병사와 무고한 시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역사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 동안 벌어진 살육과 파괴는 깊은 증오로 남았고, 전쟁이 길어진 만큼 평화의 기회가 멀어진 것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런 우리야말로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하루 빨리 끝내는 데, 누구보다 앞장 서야 할 것이다. 최근 국제사회의 흐름을 면밀히 들여다보면서 우리가 신냉전의 도래를 막고 평화와 번영을 확보할 길이 진정 무엇인지 숙고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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