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화당 신간 소개 - 예술과 암호—반구대의 고래 - 김혜련
수정 : 0000-00-00 00:00:00
예술과 암호—반구대의 고래
김혜련
Arts and Code—Whales of Bangudae
Heryun Kim
170×257mm / 양장 / 160면 / 컬러 도판 103점 / 40,000원
화가 김혜련의 새 작품집 『예술과 암호—반구대의 고래』는 울산 반구대암각화 유적에 대한 깊은 감동에서 출발한 일련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서정적 색채로 울림을 주는 유화 작업과 더불어 먹선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는 작가는, 암각화 속 고래 그림들에 주목해 그들에게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거대한 규모의 작품들을 통해 고래라는 형태의 웅장함을 목격할 수 있으며, 또한 세로로 긴 캔버스에 수직 구도로 그려진 고래들에게서 초월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비교적 작은 사이즈의 암각화 드로잉들도 함께 선보이고 있는데, 국내외의 암각화들을 2018년부터 현재까지 그려 온 것이다. 의미를 환원하지 않고 축적함으로써 드로잉들은 풍성해지며, 규모의 면에서 고래 그림들과 대비되는 조화를 이룬다. 이에 더해 작가가 전국을 찾아다니며 작업한, 작품들의 중요한 근간이 되는 암각화 탁본을 수록함으로써 그가 고대 및 선사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순간부터 반구대암각화의 고래 그림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보여준다.
반구대 벽면에서 흰 캔버스로 옮겨 간 고래들
특유의 서정적 색채가 빛나는 작업들로 한국 화단에서 자신의 자리를 공고히 해 온 화가 김혜련. 과일과 신발 같은 사물부터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국토의 풍경에 이르는 다양한 범주를 보여준 전작 『김혜련—분단의 풍경』(2013)에서 그는 “작고 여린 것들을 통해 존재하는 것들의 강렬한 소리”를 들려준 바 있다. 2017년부터는 유화와 병행해 오던 먹 작업을 본격적으로 선보이며 선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제 그는 직접 방문한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 유적지에서 역사적인 지식을 습득하고, 이를 확장시켜 작품화한다. 빗살무늬 토기 문양을 그린 〈나의 신석기〉(2018), 『조선고적도보』와 박물관 소장 유물들을 탐구하여 그린 〈예술과 암호—고조선〉(2019) 등의 작품이 그 예이다. 또한 『훈민정음 해례본』을 필사하며 경험한 ‘정음(正音)’의 공감각적 신체성을 수묵 연작 ‘정음’(2021)으로 그려내기도 했다. 이 작품들을 포함, 그동안의 작업들을 책에 수록함으로써 작가가 걸어 온 발자취를 보여주고자 했다.
작가가 이번 『예술과 암호—반구대의 고래』에서 주목하는 대상은 1971년 발견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후보가 된 울산 반구대암각화의 고래들이다. 반구대암각화는 한국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암각화 유적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해양수렵도(海洋狩獵圖)로, 수많은 동물 그림과 함께 고래 그림 58점이 새겨져 있다. 김혜련은 그 거대한 존재를 간결한 선으로 새겨 놓은 암각화에서 선사인들의 예술적 숨결과 고래를 향한 마음을 느끼고, 자신만의 초월적인 감정을 담아 그들을 흰 캔버스 위에 펼쳐 놓는다. 이를 지켜본 전곡선사박물관의 이한용 관장은 「책머리에—고래를 그리는 마음」에서 그 작업을 일컬어 “바위 속 순간의 기억으로 갇힌 고래들에게 찬란한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무한한 자유의 바다를 선물”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고래들을 위한 천상의 수족관을 나만의 깊은 먹색과 모두를 따뜻하게 감싸 줄 푸른색으로 채우고 싶다”는 작가의 염원이 담긴 만큼, 이 책은 역사와 현재, 바다와 하늘 사이를 유영하는 다채로운 화면을 보여준다.
‘형태’라는 세계
큐레이터 브리타 슈미츠(Britta Schmitz)는 에세이 「시간의 안과 밖(In and Out of Time)」에서 문화와 시간, 장르와 풍경 사이를 오가는 작가의 작업을 아울러 ‘형태라는 어휘’로 집약해 해석한다. 그에 따르면 김혜련은 이 어휘를 ‘독자적인 예술 언어’로 전달함으로써 이 세계의 문화가 존재한 이래 생성하고 있는 형태들을 ‘현시점으로 옮겨’ 놓는다. 이러한 형태는 작가에게 인간 환경의 사실과 조건, 현상을 대변할 수 있는 자산으로서 기능하는데, 그는 이 ‘형태 자산’을 세계 곳곳의 현장을 방문하며 찾아내고, 탐구하고, 고민한 끝에 그 인내의 시간이 깃든 깊이있는 먹선으로 표현한다. 슈미츠는 특히 김혜련이 고래에 집중하게 된 까닭에 대해 작가가 실제로 느낀 친밀감 때문은 물론, 형태라는 어휘가 그러한 것처럼 고래가 ‘전 세계에 걸쳐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는 동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를 잘 드러내기 위해 작가는 연작이라는 형식을 취하며, 그에 의해 긴밀한 연결성을 지니게 된 고래 그림들에서 농축된 주제를 감상할 수 있다.
이에 더해 2부에서 보여주는 작은 드로잉들은 반구대뿐만 아니라 전국의 암각화들, 나아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암각화들을 2018년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그려 온 결과물이다. 작가는 조사 과정에서 발견한 형태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그 의미가 축적되면서 드로잉들은 작은 사이즈와 관계없이 풍성해진다. 각각이 개별적인 형태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메시지를 이루는 이 드로잉들은 “우리 세계를 구성하는 형태들의 정밀함과 그 정신적 힘에 대한 일종의 연설”이 된다.
친밀하고도 고귀한 존재, 고래
김혜련은 울산 반구대암각화를 탐구하며 조감적 형태, 조형적 예술성뿐만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선사인들의 마음을 이해해 갔다. 당시 고래는 공동체의 생존을 위한 사냥의 대상이었지만, 반구대암각화 벽면에는 그 희생에 고마워하며 기도한 마음이 그대로 남았다. 돌이라는 단단한 재료에 깊이 새겨 넣은 그림들에서 그들이 바치는 최고의 감정을 알아차린 작가는 450×270센티미터의, 세로로 긴 극단적인 형식을 취해 수직 구도로 고래들을 배치한다. 그에게 역시 고래는 친밀하고 익숙한 존재인 동시에 고귀한 정신적인 존재이며,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고래들의 모습에서 그 초월적인 감정이 느껴진다.
더불어 광활한 캔버스 위에 놓인 고래들에게서는 거대한 크기만큼이나 자유로운 모습이 돋보인다. 각기 다른 푸른 배경 속에 그려진 고래들은 바닷속을 유유히 유영하는 것 같으면서도 높은 하늘을 누비고 있는 듯하다. 어미 고래의 등 위에서 따라가는 아기 고래(pp. 56–59), 그물과 사투하는 고래(pp. 44–51), 배 주름이 도드라진 귀신고래(pp. 67–69), 서서 잠자는 향유고래(pp. 90–95) 등, 그림에 고스란히 옮겨진 암각화 속 따뜻한 표현들은 각각의 고래를 향한 깊은 애정을 전달한다.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었으며, 1부 ‘반구대의 고래’에서는 언급한 작품들을 포함해 총 10점의 고래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작품의 규모를 대략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도록 전체 그림의 세부를 함께 수록했다. 2부 ‘암각화 드로잉’에서는 반구대암각화를 비롯해 세계의 암각화를 담은 42점의 드로잉을 감상할 수 있다. 3부 ‘암각화 탁본’에는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상주 물량리 암각화, 나주 운곡동 암각화 등 전국의 암각화를 찾아다니며 작업한 탁본 12점이 실렸다. 1, 2부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자료로, 먹물 두들김이라는 행위를 통해 전국 곳곳의 지형들 그리고 선사시대의 예술적 손길이 드러난다. 작품 페이지를 감상한 뒤, 고대 및 선사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순간에서 반구대암각화에 이르는 여정을 진솔히 써 내려간 「작가의 말—고래와 나」를 읽고 나면, 다채로운 시간과 문화를 오가는 김혜련의 세계를 풍성히 느낄 수 있다.
책에 실린 글은 모두 영문과 함께 수록해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 독자들도 감상할 수 있게 했으며, 특히 독일의 독립 큐레이터 브리타 슈미츠의 글은 원어로도 수록되었다. 책 출간과 연계하여 개인전 「고래는 물고기가 아니다—예술과 암호: 반구대」가 전곡선사박물관에서 2024년 10월 25일부터 2025년 2월 23일까지 열린다.
차례
책머리에—고래를 그리는 마음 이한용
Preface—Drawing Whales from the Heart Hanyong Lee
에세이—시간의 안과 밖 브리타 슈미츠
Essay—In and Out of Time Britta Schmitz
Aufsatz—In and Out of Time Britta Schmitz
반구대의 고래
Whales of Bangudae
암각화 드로잉
Drawings of Petroglyph
암각화 탁본
Rubbings of Petroglyph
작가의 말—고래와 나 김혜련
Artist’s Note—The Whale and Me Heryun Kim
작가 약력
Biography
저자 소개
김혜련(金惠蓮)은 1964년 경상남도 창원에서 태어났다. 1988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한 후 1990년 동대학 미술대학원 서양화과에서 미술이론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베를린 예술종합대학교에서 회화실기로 1993년 학사학위를, 1994년 석사학위를 받았고, 1998년 베를린 공과대학교 예술학과에서 「에밀 놀데의 이국적 정물화와 독일어 접두사 우어(Ur)의 상관관계」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Exotische Stilleben Emil Noldes (2001), 『낭만을 꿈꾼 표현주의 화가 에밀 놀데』(2002), 『내 그림 속의 비밀』(2008), 『김혜련: 분단의 풍경』(2013) 등이 있다. 주요 개인전으로 「예술을 위한 신발」(2005), 「달의 정원」(2008), 「그림에 새긴 문자」(2011), 「김혜련: 1992–2011」(2011), 「비밀의 문자」(2017), 「정적의 소리: 독일의 숲」(2019), 「그림을 쓰다: 훈민정음」(2022)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프랑스 루이비통예술재단, 베를린 중앙연방도서관재단, 베를린 그라포테크, 경기도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제주도립미술관,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서울대학교, 주독일한국대사관, 주튀르키예한국대사관, 세화미술관, OCI 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신문협동조합「파주에서」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