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오해 ⑯ 한(恨)이냐? ‘붉은 악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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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恨)이냐? ‘붉은 악마"냐?
한국 문화를 압축하는 키워드로서 가장 흔히 쓰이는 표현이 ‘한의 문화"가 아닌가 싶다. 과연 그런가? 한, 슬픔, 애수, 비애, 눈물 이런 것이 문화의 정신적 핵심이 되는 민족이나 나라가 과연 있을까? 나는 이것이 식민지 시대에 우리 민족을 폄하하고 주눅 들게 만들기 위해 일본의 지식인과 학자들이 뒤집어씌운 정신적인 ‘멍에"라고 생각한다. 식민지 조선을 사랑하고 이해했다는 평을 듣는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의 『조선의 미술』이란 책에는 ‘애수 어린 미가 그들(조선인)의 친한 벗"이란 구절이 나온다. 더욱 유감스러운 것은 60년대와 70년대에 우리의 민속학을 일으켰다고 하는 한국 학자들의 저서에도 유사한 관점과 표현이 제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원 3세기 당시의 동이족(東夷族) 여러 나라의 정치, 문화, 풍습을 비교적 소상히 알려주고 있는 중국 역사서 『삼국지』 위서(魏書) 동이전에는 부여에서는 ‘정월달에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나라 가운데 사람들이 모여 며칠 동안 계속 먹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추는데 이를 영고(迎鼓)라고 부른다" 하였고, ‘고구려 백성은 노래 부르기와 춤추기를 좋아하여 모든 읍과 촌락에서 밤이 되면 많은 남녀가 모여 노래하며 즐겨 노는데 이를 동맹(東盟)이라 한다" 하였고, 마한에서는 ‘5월에 모종을 끝내고 귀신에게 제사지낸다. 많은 사람이 떼 지어 노래 부르고 춤추며 술 마시기를 밤낮을 쉬지 않는다" 하였다. 이것이 우리의 문화적 유전인자가 아닐까? ‘붉은 악마"는 이 유전 인자의 현대적 발흥이 아닐까?
술자리 모임을 비교해보면 일본인은 노래를 불러도 조용히 부르고, 중국인은 노래 부르는 경우가 흔치 않은 것 같다. 한국인은 마이크 잡으려 다투고 잡았으면 내려놓지 않는다. 돌아가며 빠짐없이 ‘노래 일 발 장전"해야 하는 술자리 문화는 한국의 독특한 문화이다. 노래방 기계(카라오케)를 만든 나라는 일본이고 그것은 한 · 중 · 일 세 나라에 널리 퍼졌다. 그런데 노래방이란 독특한 산업을 발전시켰다는 면에서 보자면 한국은 유일하거나 최소한 으뜸인 나라가 아닌가 싶다.
한(恨)은 우리의 ‘문화"가 아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주눅 들지도 말고 우리 청소년들을 주눅 들게 만들지도 말자.
박종일(지혜의 숲 권독사)
#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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