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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오해 ⑳ 2천년이 지나도 비단은 여전히 뜨거운 화두

입력 : 2015-07-23 13: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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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년이 지나도 비단은 여전히 뜨거운 화두

 

세레스(Seres)는 중국에 관해 서방인이 가장 먼저 알게 된 ‘지식"이었다. 세레스는 ‘비단의 나라"란 뜻으로서 비단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동방의 어떤 나라를 가리켰다. 중국을 가리킬 수도 있고 비단 판매에 종사하는 중앙아시아의 어느 나라를 가리킬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서방이 가졌던 중국에 관한 첫 번째 인상에는 비단이라고 하는 신비한 직물이 포함되어 있었다. 고대 중국과 서방의 교류는 비단 교역으로 시작되었다. 서방 사람들은 비단을 세르게(Serge)라 불렀고 그 때문에 중국을 세리카(Serica), 중국인을 세레스(Seres)라 불렀다. 기원 전 5세기 무렵에 중국의 비단이 파미르 고원을 넘어 인도와 페르시아에 전해졌고,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 이후로 다시 시리아 사람들의 손을 거쳐 유럽에 전해졌다. 비단을 처음 본 서방 사람들은 이 천의 원료가 무엇인지를 알 수 없어서 그들에게는 가장 익숙한 천의 원료인 양모에다 비유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르고 호의 영웅 이아손의 모험담 가운데 중요한 주제의 하나가 나무에서 자라는 황금 양모를 찾는 일이었다. 로마의 지리학자 스트라보(BC58-AD21)는 "세레스인은 아시아의 가장 먼 동쪽에 살고 있다. 혹독한 기후 때문에 그곳의 어떤 나무 가지에서는 양모가 자라며.....사람들은 이 양모를 이용해 아름답고 섬세한 천을 짠다"고 기술했다. 그의 후배 지리학자 플리니우스(AD23-79)는 "세레스인은 양모가 자라는 나무 가지를 채취해 물에 담갔다가 빗질하여 양모를 때내고 그것으로 비단을 만든다. 허영심 많은 로마의 부녀자들이 이 천으로 만든 투명한 옷을 입고 대중 앞에 나서기까지는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머나먼 거리를 운반해와야 한다"고 기술했다.

 

요즘 중국이 ‘21세기 바다의 비단길"을 만들자는 구호(一帶一路)를 내걸고 해양으로의 진출을 확대하자 미국과 일본이 앞장서 막으려는 과정에서 여러 형태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음을 본다. 비단의 원료가 나무에서 나는 양모가 아니라는 사실은 알게 되었지만 2천년이 지나서도 비단은 여전히 뜨거운 화두인 것 같다.

 

 

 

 

박종일(지혜의 숲 권독사)

 

 

#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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