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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오해 ㉔ ‘갑’일 때, ‘을’일 때

입력 : 2015-09-25 12:55:00
수정 : 0000-00-00 00:00:00

‘갑"일 때, ‘을"일 때

 

2차대전 시기의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는 요즘 우리사회의 주요 화두이다.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은 민간에서 사업으로 벌인 일이라 정부는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J. W. Dower(MIT 명예교수)가 쓴 Embracing Defeat(1999년 출간)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일본 천황의 항복 방송이 나가자마자 ‘적군은 일단 상륙하면 부녀자들을 남김없이 능욕할 것"이란 소문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내무성 정보과는 이 소문이 일본 자신의 군대가 점령지에서 벌인 행동과 관련되어 있음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리하여 종전(終戰)(일본 스스로는 항복이나 패전이라 부르지 않고 종전이라고 한다) 후 겨우 3일 만에 일본정부는 미국 점령군을 위한 ‘R. A. A"(Recreation and Amusement Association, 특수위안시설협회)를 창설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 단체의 설립목적은 ‘일본 양가 부녀자의 정조를 지키기" 위한 ‘방파제"를 만드는 것이었다. 내무성이 앞장서고 외무성, 대장성, 경시청, 동경도청 등의 정부기관이 이 프로젝트의 수행에 참여했으며 권업(勸業)은행이 협회에 3천만 엔의 자금을 긴급 융자해주었다. 은행에 융자를 지시했던 대장성의 엘리트 관료 이케타 하야토(池田勇人)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여자의 정조를 지키는데 1억 엔이라고 해도 비싸다고 할 수는 없다." 이 사람은 훗날 수상의 자리에 올랐다.

 

협회는 발족하고 나서 10일 이내에 1,360 명의 ‘여성사무원"을 모집했는데 그들의 나이는 18세에서 25세 사이였다. 이런 ‘특수위안 시설"이 동경 시내에서 빠른 속도로 늘어났는데 어떤 통계에 따르면 33곳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 밖에 20여 곳의 도시에서도 ‘특수위안 시설"이 비온 뒤 죽순처럼 생겨났다.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이런 시설들은 미국 병사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R. A. A"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빠르게 발전했지만 몇 달이 못가 점령군(미군) 당국에 의해 폐지되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비민주적이고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는 공영 매춘업을 금지한다"는 것이었지만 내면의 실질적인 이유는 ‘점령군 내부에 성병 환자가 급격히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성병 치료라는 긴급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미군 당국은 1946년 4월에 페니실린 제조 특허기술을 일본제약공사에 매각하는 것을 허가했다.

 

위에 소개한 사례는 일본이 ‘을"(피점령국)이 되었을 때 발 빠르게 벌인 일이다. 그렇다면 일본 군대가 ‘갑"(점령군)이었을 때 일본 정부는 어떻게 했을 것 같은가?

 

 

 

 

 박 종 일 ( 지혜의 숲 권독사 )

 

 

#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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