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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 과학스토리 (119) 흥미진진한 면역이야기(4) _ 생각 없는 천재들, 후천면역계

입력 : 2023-11-01 07:06:48
수정 : 2023-11-01 07:07:54

(119) 흥미진진한 면역이야기(4) _ 생각 없는 천재들, 후천면역계

 

면역계의 핵심적인 일은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는 일이다. 아주 극단적인 이분법으로 사는 인생들이다. 적이면 죽이고 아군이면 살린다. 앞서 말했듯 선천면역계는 이미 5억년 동안의 맞대련으로 체득한 최고의 방어 시스템이다. 그러나 새로운 얼굴, 신종 병원균, 그리고 마치 친구인 듯 속이며 등장하는 사기꾼 병원체들은 어떻게 상대할까?

 

(형질세포는 생명은 짧지만 초당 수 천개의 항체를 발사한다)

 

아무리 속이려 해도 세균들은 세균만이 가지는 특징이 있다. 편모란 것은 마치 모터처럼 이동할 때 사용되는데 워낙 독특하여 면역계는 이 편모를 보면 병원체인 줄 안다. 또 병원체 대부분이 원핵생물인 탓에 핵막이 없다는 것도 표적이 된다. 그리고 외벽도 세포막이 아닌 세포벽으로 되어 있어서 진핵 세포와 구분이 된다. 이런 차이점은 선천면역계의 공격 포인트가 된다. 코로나는 인체와 비슷한 단백질을 만들어 아군으로 위장하여 세포 안으로 잠입한다. 의도를 가지고 한 행동은 아니지만 워낙 자주 번식을 하다 보니 돌연변이 중에서 잭팟이 제대로 터진 것이다. 병이 깊어졌다는 것은 선천면역계를 돌파한 대단한 놈들이 나타난 것이다. 이럴 때는 보통과는 다른 특별한 대응이 필요하다. 후천면역계가 바로 준비된 그 특공대다.

나무 가지 모양을 하고 있어서 '수지상 세포'(이하 가지 세포)로 불리는 선천면역계의 전령이 있다. 선천면역계가 싸우는 동안 가지 세포는 적들의 특이한 정보를 들고 림프액을 따라 이동하여 후천면역계의 핵심인 ‘T 세포에게 전달한다. 준비된 수억 개의 ‘T 세포는 가지 세포와 끊임없이 정보를 교환하는데 자물쇠와 열쇠가 만나듯 제대로 조립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T 세포가 바로 침입자들의 타고난 천적이다. 면역계는 병원체가 가질 수 있는 모든 단백질의 조합을 만들 수 있다. 이전에 있었던 병원체와 앞으로 생겨날 병원체에 대응할 준비를 가지고 있는 우주 최대의 도서관이 바로 T 세포다. 가지 세포가 바로 그 T 세포를 긴 잠에서 깨운 것이다. 다만 림프액이 워낙 느리게 흐르는 탓이 이미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그래서 독감을 이겨내는데 약 일주일의 시간이 필요하다. 각성된 T 세포는 약 1만 개의 군단이 될 때까지 순식간에 복제 신공을 펼친다. 손오공보다 빠르다. 군단을 이루면 절반은 즉시 현장으로 출동하고, 나머지 절반은 더 완벽한 면역 세포를 깨우기 위해 골수에 남는다. 가지 세포를 만나 각성한 T 세포를 '조력 T 세포(Helper T Cell)'라 부르는데, 현장으로 출동한 조력 T 세포는 지역 사령관처럼 행동하며 아군을 지휘한다. 조력 T 세포는 직접 싸우는 것은 아니라 말 그대로 도움을 준다. 큰 포식세포가 조력 T 세포를 만나면 헐크처럼 강력하게 변한다. 죽음의 타이머도 리셋되어 생명이 연장된다. 원래도 미쳐 날뛰는 중성구 역시 한층 더 난폭해지고 수명도 길어진다. 조력 T 세포는 전투원들을 격려하고 현장을 지배한다. 전쟁터는 이쯤 되면 정리가 되지만 간혹 지독한 병원체들이 있다. 그래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직 어벤저스의 맏형인 항체는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면역계의 꽃이자 궁극의 강자는 항체다. 항체가 출동하면 아무리 독한 상대라도 게임이 끝난다. 코로나 백신도 사실은 잠자는 항체를 깨우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다.

 

항체의 주인공은 'B 세포'. 'B 세포'는 림프구 한량으로 림프액에 발을 담그고 노닥거리는 것이 주된 업무다. 그러다가 ‘T 세포처럼 흘러들어 온 잔해 중에서 자기가 가진 수용체와 비슷하게라도 맞는 조각을 만나게 되면 즉시 각성을 하게 된다. 각성하면 T 세포처럼 'B 세포'도 분신 신공을 발휘하여 수많은 클론을 만들어 서둘러 전쟁터로 달려간다. 비슷하게라도 맞는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자. 서둘러 출동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아직 불완전하지만 지체되어 병원체가 승리하면 생명이 끝나기 때문이다. 처음 출동한 B 세포는 적을 향해 총을 쏘지만 적의 머리통보다는 가슴이나 다리쯤을 맞추는 실력이라고 한다. 이 정도 실력으로도 전투에 큰 힘이 된다. 임시방편으로 적을 물리 치면 다행이다. 하지만 물리치지 못해도 시간을 벌면 성공이다. 진짜 무서운 항체를 만들기 위한 시간 말이다. B 세포는 한 번 더 각성하면 전투력이 우주 최강이라 할 수 있는 '형질세포'가 된다. 레벨 업을 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각성한 B 세포와 각성한 조절 T 세포가 만나면 완성된다. T 세포와 B 세포가 서로 적의 존재를 상호검증한 것으로 간주한다. 틀림이 없는 것이다. 이 순간에 'B 세포'는 적의 정체를 확인하고 즉시 형질세포로 레벨 업하는 것이다. 형질세포는 초당 2천 발의 항체를 발사하며 눈부신 전투력으로 적을 섬멸한다. 전쟁은 완벽하게 면역계의 승리로 끝난다.

평화가 찾아오고, 전쟁터는 하나씩 청소가 이루어진다. 역할을 다한 면역 세포들은 순서에 따라 자멸을 선택하고 일부는 살아남아 이 전쟁을 기록으로 남긴다. T 세포와 B 세포의 일부가 림프절에 오래도록 살아 남아서 적을 기억한다. 그러다가 같은 적이 등장하면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즉시 분신 신공을 발휘하여 전쟁의 현장으로 출동하여 초기에 제압을 한다. 이것이 면역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며, 백신의 원리이다. 누구 하나 지시를 받지는 않지만 마치 집단지성처럼 완벽하게 돌아간다.

 

신문협동조합 파주에서 편집위원 허 심

#1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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