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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다양성예술컬럼 <상처와 치유의 예술> 2회 - 불안과 공포의 화가, 뭉크

입력 : 2023-09-12 01: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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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다양성예술컬럼 <상처와 치유의 예술> 2

 불안과 공포의 화가, 뭉크

          글 : 신경다양성예술센터 전승일 대표, 애니메이션 감독

 

                                          <뼈가 있는 자화상, 1896>

 

노르웨이 출신의 표현주의(Expressionism) 화가이자 판화가인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5살이 되던 해 어머니가 결핵으로 사망하고, 이어 14살 때 누나까지 결핵으로 사망했으며, 여동생은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얼마 후 생을 마감했고, 남동생도 결혼한 지 몇 개월 만에 죽고 만다. 이렇게 어린 시절 경험한 가족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공포는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작품의 주제가 되었다.

 

1881년 크리스티아나(Kristiania)에 있는 예술학교(Royal School of Art and Design)에서 그림 공부를 시작한 뭉크는 아나키스트이자 허무주의자(Nihilist)인 한스 예거(Hans Jaeger)의 영향을 받아 보헤미안적인 삶을 살기 시작했다. 보헤미안(Bohemian)의 주창자인 한스 예거는 보헤미안이 해야 하는 예술은 솔직하게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야 한다고 하면서 뭉크에게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상태(Psychological State)를 그림으로 그릴 것을 독려했다.

 

뭉크는 1880년 무렵부터 자화상을 그리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는 자화상 속에서 죽음과 불안, 사랑과 고통 등 자신의 내면과 정신세계를 독창적으로 시각화하였다. 이에 대하여 뭉크는 나의 가정은 병과 죽음의 가정이었다. 확실히 나는 이 불행을 이길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죽음과 아이>(1899)

 

그의 작품 <죽음과 아이(Death and the Child)>(1899)는 자신의 삶에 드리워진 죽음과 절망의 공포를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나는 날마다 죽음과 함께 살았다. 나는 인간에게 치명적인 두 가지를 갖고 태어났는데, 그것은 폐결핵과 정신병이다. 죽음은 내가 태어난 요람을 둘러싸고 있던 천사들이었다고 말한 뭉크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지배하는 가족의 어두운 그림자와 불안을 그림에 담았다.

 

                                         <아픈 아이>(1896)

 

죽어가는 아이를 그린 그의 그림 <아픈 아이(The Sick Child)>(1896)1885년 이래 그린 <아픈 아이> 연작 14점 가운데 네 번째 작품이다. 침대에 기대앉은 소녀의 퀭한 표정과 공허한 눈빛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진하게 드리워져 있고, 소녀의 손을 잡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어머니는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인 듯 검은색 옷을 입고 있다.

 

<아픈 아이> 그림 또한 뭉크의 어린 시절 상처, 즉 누나 요안느 소피(1862~1877)가 죽음을 앞둔 모습을 연상시키며 슬픔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그림에서 소녀의 손을 잡은 채 슬픔에 잠겨 있는 여인의 모델은 뭉크의 이모라고 전해진다. 그런데 어두운 색의 옷을 입고 있는 이 여인은 어쩌면 이미 세상을 떠난 뭉크의 어머니로 해석되기도 한다.

 

뭉크는 무려 40년 동안 아픈 아이를 주제로 드라이포인트, 에칭, 유화 등 여러 가지 재료로 그렸으며, 고흐와 고갱의 작품을 보고 난 후에 좀 더 과감한 색채와 터치를 구사하며, 개인의 감정을 담아내는 표현주의 방식으로 나아가게 된다.

 

 

                                       <사랑과 고통>(1895)

 

유화, 수채화, 목판화 등 다양한 재료로 제작한, 흔히 <뱀파이어(Vampire)> 연작으로 불리는 작업 중 하나인 <사랑과 고통(Love and Pain)>(1895)은 어두운 배경 속에 힘없이 여성의 품에 안겨 있는 남성, 그리고 붉은 머리의 창백한 피부색의 여성이 남성의 목덜미에 키스를 하는듯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흡혈귀처럼 보이는 여성은 1898년 무렵 뭉크가 만난 여성 툴라 라르센(Tulla Larsen)으로 알려져 있으며, 툴라의 애정 집착과 소유욕으로 인해 권총 발사 사건이 일어나고, 둘의 관계는 정리되었다고 한다. 한편 뭉크의 여동생이 세상을 떠난 후의 슬픔을 그린 것이라는 해석, 뭉크가 매춘 여성을 만난 후 그린 그림이라는 해석이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그의 친구이자 시인인 스타니스와프 프르즈비제프스키가 뭉크의 전시회에서 이 그림을 보고 목을 물고 있는 핏빛 머리의 흡혈귀와, 흡혈귀에 순종하게 된 남성이라는 해석을 내놓았고, 이로 인해 그림 제목이 <뱀파이어>로 바뀌게 된다. <뱀파이어> 시리즈 중 가장 고가에 판매된 작품의 금액은 한화 약 430억원으로 뭉크 그림 경매 중 최고가의 기록을 세웠다.

 

                                             <마돈나>(1895)

 

그의 또 작품 <마돈나(Madonna)> 연작은 여성과 죽음, 특히 섹슈얼리티와 공포의 이미지로 연결시킨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서양미술에서 순종, 믿음, 순결, 성스러움의 상징은 성모 마리아였다. 하지만 뭉크는 성과 사랑에 사로잡힌 죽음의 신, 팜므 파탈(Femme Fatale)의 여신으로서의 마돈나를 그렸다. 작품 <마돈나>의 모델은 그가 사랑한 또 다른 여인 다그니 유엘(Dabny Juel)이다.

 

그녀는 뭉크의 구애를 뿌리치고 뭉크의 친구와 결혼했지만, 그녀의 애인이었던 러시아 청년에게 살해당한다. 또 다른 <마돈나> 연작 중에는 정자 모양의 태아가 작게 그려져 있는데, 이는 마돈나라는 의미를 종교적인 차원이 아니라 생식, 출생, 죽음의 이미지로 변형하여 연상시키게 한다.

 

                                       <마라의 죽음>(1907)

 

<마라의 죽음(Death of Marat)>(1907)에 등장하는 장폴 마라(Jean-Paul Marat)는 프랑스 대혁명 시기의 정치가로서 자코뱅 당을 이끌고 지롱드 당을 공격했으나, 지롱드 당에 동조한 샤를로트 코르테(Charlotte Corday)라는 여자의 칼에 찔려 죽은 인물이다. 혁명정부에 참여하여 프랑스 문화정책을 새롭게 세우는데 앞장섰던 화가 자크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마라의 죽음>(1793)을 그렸다.

 

그림 속의 침대 위에는 죽은 마라의 시체가 있고, 침대 앞에 여인이 나체로 서있다. 침대 위는 핏자국이 곳곳에 있다. 그런데 실제로 이 그림은 마라의 죽음과는 별로 관련이 없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불안과 공포가 묻어나는 이 그림에서 죽어있는 남자는 뭉크 자신이고, 남자를 죽이고 나체로 서있는 여자는 바로 <뱀파이어>에서도 모티브가 된 툴라 라르센이라는 분석이다.

 

 

                                                  <절규>(1893)

 

마지막으로 언급할 그의 최고의 걸작 <절규(The Scream)>(1893)는 파스텔, 템페라, 유화, 석판화 등으로 그려진 그림이다. 화면은 휘청대며 구부러진 붉은 하늘과 불안한 사람의 절규하는 얼굴, 그리고 그 둘을 분리하는 불안정한 난간과 멀리 흐릿한 두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그림에는 이제는 알려진 비밀이 있다. 그림 왼쪽 상단에 미친 사람만이 그릴 수 있다(Could only have been painted by a Madman)”라는 문장이 쓰여져 있는 것이다. <절규>를 소장한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에서 공식 발표에 따르면, 이 연구를 담당한 마이 굴렝 큐레이터는 이 문장에는 자신이 정신병자로 간주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격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모두 섞여 있다고 하였다.

 

또한 흑백 석판화 <절규>에는 뭉크가 나는 공포에 떨면서 자연의 거대한 비명를 들었다라고 표현한 문장이 있다. 이에 대해 영국박물관 큐레이터 줄리아 바트럼은 뭉크는 당시 오슬로 근교를 산책하던 중 핏빛으로 물드는 하늘을 보고 절규를 통해 감정을 포현한 것이라고 했다. , 그림 속 인물은 자연의 절규를 듣고 반응하며 자신의 귀를 가리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불안과 공포, 고독과 우울, 고립과 상실의 화가 뭉크는 공황발작, 조울증, 알코올 중독, 신경쇠약 등을 겪었으며, 말년에는 시력을 거의 다 잃었고, 1944123일 홀로 죽음을 맞이했다.

 

 #1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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