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기고 <영화 추천> ‘콘크리트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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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 기고 <영화 추천>
‘콘크리트 유토피아’
오랜만에 좋은 한국영화를 봐서 펜을 들었다.
온 도시가 지진과 재난으로 무너졌지만 유일하게 남은 황궁아파트.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아파트 주민이 아닌 사람을 바퀴벌레라며 쫓아낸다. 주민을 살리기 위해 무너진 도시를 뒤지면서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찾아오는 아파트 수비대.
재난 상황에서 자신과 가족만을 위한, 좀 더 나가면 아파트에 소속된 사람들만을 위한 이데올로기만이 인정된다. 이 이념에 의거하여 그 바깥의 사람들은 배척한다. 바깥 사람을 숨겨주고 있던 사람들은 주민들앞에서 맹렬한 비난을 받으며, 무릎 꿇고 “잘못했습니다”를 200번 외치는 벌을 받는다.
아파트 주민을 살리기 위해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수색하는 수비대는 아파트 바깥에서 살인마저 서슴지 않게 된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하는 현실. 아파트 사람들이 아닌 거리의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 인육을 먹는다는 상징을 보여준다. 점점 자기들만을 위한 이념에 충실하고, 그 규율에 더욱 억매이며, 그 이념을 위해서라면 바깥의 모든 것이 바퀴벌레가 되고 죽일놈들이 된다. 그래서 싸움을 해서라도, 총을 쏘아서라도 죽여버려야하는 것이다.
정작 주민만 남게 한다는 대책위의 원칙은, 대표가 주민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며 허상이었음을 드러낸다.
이 황궁아파트를 떠나게 된 상민과 부인. 무너진 성당에서 손잡고 밤을 지내고 나니 남편이 죽었다. 두 사람에게 쏟아지는 햇살. 그리고 남편의 죽음앞에 눈물을 흘린다. 돌무덤을 같이 마련해준 여성들이 같이 가자고 제안하다. 옆으로 쓰러진 아파트에서 도우며 사는 사람들. 한 여자가 주인공에게 주먹밥을 내민다. “이거 먹어도 돼요? 저는 아무것도 안했는데...”, “그럼요, 같은 사람인데.” 이 대답에 주인공은 막혔던 눈물을 터뜨린다.
이 영화는 짧지만 뒷부분이 있기에 재난 영화와 다른 위치를 갖게 되었다고 본다. 90도 각도로 무너진 아파트에서 서로 도우며 삶을 잇는 여성들이 주가 된 작은 공동체. 그 뒷부분에서 보여 주는 ‘아무것도 안한 사람’에게 주먹밥을 주는 이념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살 길이라 말하는 것이리라.
재난상황에다, 폭력이 난무하고, 극한 대결과 긴장이 깔린 영화였는데도 영상처리를 잘 해서 역하지 않았다. 남편이 죽었을 때 여주인공의 눈동자에 극하게 클로즈업된 장면, 이병헌이 자신이 살인자임이 밝혀졌을 때 미친 사람같은 연기와 영상포착, 이병헌의 눈빛......
영상, 편집, 그리고 연기자들 연기도, 극본도 좋았다.
이영숙
#1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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