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 편
입력 : 2015-10-12 12: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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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 바람이 차다. 손수건으로 콧물을 닦는다. 문득 ‘걸레’가 떠오른다. 손수건은 얼굴을 닦지만, 걸레는 온갖 것을 닦는다. 유리창도 닦고, 창틀의 묵은 흙먼지도 닦고, 마루바닥의 흘린 음식도 닦는다. 참 소중한 물건이다. 지금, 걸레가 필요하다. 아니 걸레가 필요하다고 말하지 말고, 걸레가 되어버리면 될 일이다.
걸레
바람 부는 날
바람에 빨래 펄럭이는 날
나는 걸레가 되고 싶다
비굴하지 않게 걸레가 되고 싶구나
우리나라 오욕과 오염
그 얼마냐고 묻지 않겠다
오로지 걸레가 되어
단 한 군데라도 겸허하게 닦고 싶구나
걸레가 되어 내 감방 닦던 시절
그 시절 잊어버리지 말자
나는 걸레가 되고 싶구나
걸레가 되어
내 더러운 한평생 닦고 싶구나
닦은 뒤 더러운 걸레
몇 번이라도
몇 번이라도
못견디도록 헹구어지고 싶구나
새로운 나라 새로운 걸레로 태어나고 싶구나
(고은·시인, 1933-)
참 어려운 일
걸레가 되는 일이다
너도
나도
더럽다며
멀리해도
내가 쏟은 김칫국물
현수가 쏟은 먹물
제 몸 던져
닦아내는
걸레가 되는 일이다
걸레가 지나간 발자취
반짝!
빛난다.
(오은영·아동문학가,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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