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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고딩의 같잖은 문화 리뷰 <18> 왜 학교는 변하지 않는가 (2)

입력 : 2017-02-27 15:29:00
수정 : 0000-00-00 00:00:00

 



수험생이라면 들어봤을, 요즘에는 학생이라면 알고 있을 피곤한 사자성어가 있다. ‘삼당사락’ 이라고.

세 시간 자면 원하는 대학에 붙고, 네 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퍽 오래된 신조어다. 그니까 자지 말고 공부하라. 다르게 해석할 여지도 없이 분명한 뜻을 지니고 있을뿐더러 나는 이 말을 중학생 때부터 들어왔다.

 

한창 성장기인 청소년기에 세 시간 취침이라니. 말만 듣더라도 그렇게 가혹할 수가 없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는 열다섯 살만 되어도 해당사항 없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물론 ‘삼당사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보통은 ‘그 정도로 열심히 해야 한다’, 혹은 ‘이렇게 근소한 차이로 합격여부가 변하니 조금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사실 어떻게 봐도 부추기는 말이고, 부담을 주는 말이다. 이런 말이 만드는 것은 의욕이나 동기가 아니다. 압박하는 분위기다.

 

학생들은 보통 주어진 길을 달린다. 공부해서, 대학에 가라. 같은 말이다.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거나, 대학에 가지 않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선택지 속에 아예 없으며 알고 있다 해도 두려운 경로 일뿐이다.

그렇게 한 길에만 사람이 몰리니, 당연히 뒤처지고 탈락하는 사람이 있다.



 

1등이 있으면, 100등도 있고, 꼴등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친구들은 그걸 못 견뎌한다. 그 길이 터질 듯 미어졌다는 것을 알고도 떠나지 않는 것은 몰라서다.

다른 길을 갔을 때 어떤 결말을 맞을지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그냥 이대로 경쟁자들 틈바구니에서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고 학생들을 탓해서는 안 된다. 그 길만 비춰주는 시스템이 문제고, 이 길을 벗어나면 위험할 거라 얘기하는 분위기가 문제다.

 

학교에는 ‘진로’라는 고정 수업시간이 있다. 학생들의 폭넓은 진로 선택을 위해 정보를 제공하고 고민할 시간을 주는 시간인데, 보통은 큰 쓸모가 없다. 적성검사하고, 직업영상 보고, 심지어는 입시정보까지 알려주지만 그게 무슨 ‘진로’시간인가 싶은 게 사실이다.

꿈을 가진 아이들이 ‘진로’라는 틀에 박힌 수업을 듣고 진로를 결정했을까? 절대 아니다. 학교 수업 중 한 과목에 흥미가 있다거나 그 외 시간에 다른 경험을 쌓았거나 중 하나다. 그리고 ‘진로’가 원하는 폭넓은 진로 선택을 위해서는 당연히 후자가 정말 중요하다.

다만 우리는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없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학생들은 학교를 나와도 학원에 처박혀 살며, 놀러가더라도 짧고 간단하게 즐길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할 여지가 없다.

그런 걸 고민해보라 하는 사람도 없고, 다들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걸 탐구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정해진 길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그런 두려움이 조성하는 분위기다. ‘정해진’ 길을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로 그 분위기다. “이렇게 살 수도 있어”, “다른 길도 있어”, 하는 이야기는 좀 더 자유로운 선택의 분위기를 만들고, 어쩌면 유구한 역사를 가진 레드오션을 여유롭게 만들 수 있지않을까?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경험담. 남들과 다른 길을 가고 기존의 모습에서 변하는 것을 두렵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조은현 「파주에서」 청소년 기자

 
#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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