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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오해 ㉘ 해적 여두목 이야기

입력 : 2015-11-21 15:14:00
수정 : 0000-00-00 00:00:00

해적 여두목 이야기

 

조니 뎁이 멋진 연기를 보여준 해적 영화 ‘카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3편(‘세상의 끝에서")에는 전 세계의 해적들이 모여 해적 왕을 뽑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동남아 해적의 두목으로 ‘칭"이란 이름의 여선장이 등장하는데, ‘칭"의 실존 모델이 되는 인물이 정일수(鄭一嫂)이다.

 

정일수의 본명은 석향고(石香姑), 소녀 시절에는 배 위에서 몸을 파는 기녀였다가 후에 남중국해의 유명한 해적 정일(鄭一)에게 시집갔다. 정일은 광동 연해지역에서 해적 연맹체인 홍기방(紅旗幇)을 세웠다. 정일수는 남편을 도와 연맹의 일을 처리하는데 뛰어난 지략을 발휘했고 무술도 익혀 실력이 보통을 넘는 해적 사회에서 문무를 겸한 인재였다. 어느 해에 정일이 태풍을 만나 바다에서 죽자 그의 양자 장보자(張保仔)가 뒤를 이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21살이었고 정일수보다 11살 아래였다. 두 사람의 관계는 겉으로는 양모와 양자였으나 실제로는 부부관계로 나아갔다.

 

홍기방은 전성기에 대형 선박 8백여 척과 소형 선박 1천여 척을 거느렸고 해적 무리의 숫자가 10만을 넘어 당시(19세기 초)에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해적집단이었다. 보유 선박과 해적 인력의 규모로 볼 때 단순히 약탈에만 의존하는 오합지졸이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자치 능력을 갖춘 집단이었다. 홍기방은 관부의 운송선과 서양 상선을 주로 약탈하였고 중국 민간선박으로부터는 ‘보호비"를 걷었다. 강력한 무력을 갖춘 영국 동인도회사의 함대도 홍기방에게 약탈당하거나 홍기방을 피해서 다닐 정도였다. 내부 규율도 엄격해서 전리품을 숨기는 자, 여자 인질을 강간하는 자, 명령을 위반하는 자는 목을 벴다.

 

청 왕조 정부는 홍기방을 소탕하기 위해 은화 8만 냥을 주고 영국과 포르투갈해군 병력을 불러들여 공격했고 한편으로는 관직을 미끼로 선무공작도 폈다. 결국 장보자는 귀순하고 종2품의 무관직을 받아들여 팽호도 일대를 지키는 장군이 되었다가 1822년에 36살의 나이로 죽었고 정일수는 마카오에 정착하여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정일수는 마카오에서 도박장을 열어 큰돈을 모았다. 직업적 연분으로 말하자면 그는 마카오 도박 산업의 창시자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도 남부 중국 해안 지역에는 장보자와 정일수가 보물을 숨겨둔 동굴이 어딘가에 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사족: ‘정일수"란 정일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경칭이다)

 

 

  

종일(지혜의 숲 권독사)

 

 

#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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