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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오해 ㉛ 재미있는 복수

입력 : 2016-01-11 13: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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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복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은본위제의 역사를 가진 중국은 예부터 은괴의 장거리 운반이 교역의 중요한 과제였다. 당 나라 때에는 “비전(飛錢),” 송 나라 때는 “비표(飛票)”라고 부르는 일종의 수표가 통용되었으나 전국적으로 통용되지는 않았다. 이런 까닭에 상인들을 위해 전문적으로 은괴를 호송해주는 무장단체인 표국이 등장하게 되었다. 표국의 활약상은 지금까지도 중국 무협영화의 중요한 소재가 되고 있다.

 


청나라 초기에 들어와서 중국 산서(山西) 상인들이 표효(票號)라고 하는 금융업을 창시했다. 표호에 찾아가 일정한 수수료를 주고 은괴를 맡기면 증표를 발행해주었다. 이 증표를 가지고 전국 어느 곳이든 표호의 분점을 찾아가 제시하면 맡긴 만큼의 은괴를 내주었다. 이후 표호는 예금과 대출업무까지 취급하며 근대적인 금융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영업구조를 갖추었으나 아편전쟁 이후로 서구 열강의 경제침탈이 심화되면서 쇠퇴하고 만다.

 


최초의 표호는 건륭(乾隆) 연간에 문을 연 일승창(日昇昌) 표호였다. 최초로 표호 사업의 아이디어를 냈고 일승창의 지배인이 된 인물이 뇌이태(雷履泰)이다. 뇌이태는 일승창을 크게 번성 시켰는데 그에게는 한 직장 안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모홍홰(毛鴻翊)란 동료가 있었다. 후에 모홍홰은 울성창(蔚盛昌)이란 포목점에 스카웃 되어가서 이 점포를 표호로 변모시키고 일승창과 겨룰 수 있을 정도로 키워냈다. 두 표호의 번성을 본받아 도합 22개의 표호가 문을 열었고 이들의 지점 400여 곳이 전국에 걸친 광범위한―서쪽으로는 지금의 우루무치까지, 남쪽으로는 지금의 홍콩까지, 북으로는 한때 모스크바에 이르는―금융망을 구축했다.

 


일승창과 울성창의 본점은 같은 거리에 나란히 붙어있었다. 두 표호의 지배인인 뇌이태와 모홍홰는 죽을 때까지 악연을 이어가며 경쟁했다. 뇌이태는 자기 손자의 이름을 홍홰라 지었고 모홍홰는 자기 손자의 이름을 이태라고 지었다. 서로 상대에게 ‘너는 내 손자뻘 밖에 안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자 했던 것이다. 동업계 사람들은 두 사람이 각자 손자를 안고가다 점포가 있는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손자들의 엉덩이를 때리면서 상대의 이름을 불러 욕하는 장면을 자주 목격했다고 한다.










박종일(지혜의 숲 권독사) 


#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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